인디 감성으로 그려낸 사이버펑크 여행, 썸데이
2021.04.26 17:26 게임메카 서형걸 기자
국산 인디 FPS 프리:원(PRE:ONE)은 1인 개발 게임이다. 개발자 PDDS가 하프라이프와 포탈 시리즈의 팬이자 모드 제작자로 이름을 알렸던 만큼, 프리:원 역시 두 게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인 개발에 처음으로 만든 단독 작품이다 보니 적지 않은 버그에 호불호가 갈리는 레벨 디자인, 스토리 연출 등으로 유저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다만,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점은 대부분 동의했다.
이처럼 프리:원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PDDS가 지난 22일, 신작 '썸데이'를 스토브 인디게임 상점에 출시했다. 고도화된 인공지능에 의한 압제가 실시되고 있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플레이어는 주인공 티토가 되어 각종 난관을 극복하며 암울한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 이 게임의 매력포인트는 바로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멋들어진 배경, 그리고 이것들을 만 원 이하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의외의 비주얼, 미래도시에 빠져들게 한다
플레이어이자 주인공인 ‘티토(Teto)’는 전작 프리:원을 즐겼던 유저라면 귀에 익은 이름이다. 프리:원에서 플레이어의 조력자로 나섰던 안경 쓴 여성 캐릭터 이름도 티토이기 때문이다. 썸데이의 티토는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엔지니어로, 가상현실을 만드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이 결실을 맺어 플랫폼을 세상에 공개하려는 순간, 기계 감시자들에게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험난한 도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티토의 곁에는 그녀가 직접 제작한 보조형 로봇 ‘어비스(ABYSS)’가 있다. 어비스는 게임 진행의 가이드 역할을 담당하는데, 주인공에 비해 세상에 대한 인식이 냉철한 편이어서 한마디 한마디가 촌철살인이다. 한가지 예시로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플랫폼 정도는 기계 감시자들도 눈 감아 줄 것이라 말하지만, 어비스는 그렇지 않으리라 예측한다. 결론적으로 상황은 어비스의 예상대로 흘러간다.
거대한 안구 형태를 한 기계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게 된 주인공 티토는 도시 곳곳을 전전하며 은신처로 가는 길을 찾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시의 화려한 외형이다. 인디게임답게 구조물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봤을 때 그래픽 완성도는 높다고 하기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하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모든 세부 요소가 조화를 이뤄 하나의 장면을 완성했을 때는 가까이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사실적’이라는 감상도 더해진다. 차가운 느낌의 철제 구조물, 몽환적이고 화려한 불빛,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빌딩까지 썸데이는 사이버펑크풍 미래도시를 매력적으로 구현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세계관에 빠져들게 만든다. 수천억 원이 투입된 사이버펑크 2077 도시 풍경도 멋지지만, 인디게임 특유의 감성으로 묘사된 풍경도 나름의 멋이 있다는 생각이다.
난해하지 않은 퍼즐,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썸데이는 프리:원과 달리 슈팅보다 퍼즐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전투에서도 몰려오는 적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것보다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것을 권장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총으로 쏴서 적을 처치할 경우 총알 수십 발이 필요한데, 폭발성 물질 주변으로 적을 모은 다음 터뜨리면 단 한 발로 해결된다. 터진 폭발물은 계속해서 다시 생성되는데, 이러한 환경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개발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퍼즐이라면 머리 아파하는 게이머들도 이 게임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기계를 작동시키거나 해킹을 하고 발판을 구하거나 사다리를 내려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썸데이의 퍼즐 요소인데, 대개 복잡하지 않은데다가 경로 표시 또는 하이라이트 등의 친절한 안내까지 더해졌다. 어려운 퍼즐에 막혀 수십 분 동안 제자리걸음만 하는 사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퍼즐이 단순하기에 고난도 퍼즐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오랫동안 미제로 남은 수학 증명을 해결하는 것과 비교적 단순한 사칙연산 문제를 여러 개 풀어 만점을 맞는 것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썸데이는 큰 고민 없이 플레이어의 앞을 가로막는 수수깨끼들을 해결하고, 그것이 다 정답일 경우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게임이다.
그야말로 만 원의 행복
썸데이 주인공 티토는 자신이 만든 가상현실 세계에 입장해 기계 감시자들을 교란하기도 한다. 소재 자체는 흥미롭고 스토리와 연관되기도 하지만, 현실과 가상현실 두 파트의 사이 게임 진행 방법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 아쉽다. 총으로 쏴서 처치하고, 각종 오브젝트를 활용한 퍼즐풀이가 있다는 점은 현실과 가상현실이 동일하다. 현실 파트에는 없는, 가상현실 파트만의 개성이 보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반적으로 게임의 개별 요소들을 하나씩 따질 경우, 깊이가 얕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들의 집합은 엉성하지 않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속도감 있는 퍼즐 슈팅 게임을 즐기고자 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런 선택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만 원이 채 되지 않는 6,650원(30% 할인, 정가 9,500원)이란 가격은 지갑마저 가벼워도 된다고 속삭이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