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言] 살인자가 주인공인 추리게임 ‘요람’을 만든 이유는
2023.05.13 10:00 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추리게임의 핵심은 범죄를 저지른 이를 찾아내 정의를 구현하는 ‘카타르시스’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수한 추리게임들이 탐정이나 변호사, 검사, 경찰 등 다양한 직업을 주인공으로 삼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권선징악을 보여줄 때, 이를 통해 느끼는 희열감은 또다른 추리게임을 찾아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여기, 살인사건을 저지른 한 명의 범인이 있다. 다만 그의 범죄는 ‘어제’이루어진 것으로, ‘오늘’ 이루어진 살인사건은 다른 사람의 짓이다. 모두가 이 사건을 저택에서 벌어진 연쇄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범인만은 이것이 별개의 살인사건임을 안다. 그렇다면 그는 이 살인사건에 어떻게 대처할까. 이런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느리고 끈적한 호흡으로 전하는 추리게임이 등장했다.
과연 이 범인은 진실을 전달할까? 위험을 무릅쓰고 정의를 구현할까? 유감스럽게도 이 게임의 개요를 읽어보자면 전혀 그렇지 않을 듯하다. 이 음울한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이유로 벌어진 것일까. 살인자의 시점에서 시작하는 추리극 ‘요람’을 개발한 팀 요람의 림포레스트(limforest)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부조리와 거짓말로 점철된 저택 속 살인사건
추리 어드벤처 ‘요람’은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추리게임이다. 게임은 크게 라이트 노벨 파트와 어드벤처 파트로 분류돼, 라이트 노벨 파트에서는 느리지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어드벤처 파트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주인공의 갈등을 만나볼 수 있다.
추리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범인을 찾아 사건을 해결해, 모든 진실을 알게 됨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살인자가 주인공인 요람에서는 이런 희열을 다루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오히려 사건에 깊게 다가갈수록 살기 위한 거짓말에 질척하게 말려들게 된다. 팀 요람은 이를 더욱 설득력 있게, 그러면서도 더욱 깊게 전하고 싶어 긴 호흡을 핵심에 두었다.
팀 요람은 총 5인 중 아트가 3인으로 구성된 팀이다. 아트 위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에셋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제한할 수 있는 저택을 배경으로 삼았다. 저택이라는 콘셉트를 더 잘 전할 수 있을 시점을 고려하다 ‘빅토리아 시대’를 다루기로 했고,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함께 고려해 ‘유산싸움’을 주제로 삼았다.
림포레스트 대표는 “1870년에 기혼여성 재산법이 생기기 전까지 여성 개인의 재산권조차도 남편에게 갔다. 당시대 여성의 법인격은 남편에게 귀속이 돼 이혼소송 외에는 법정에 설 수 없었다. 이혼소송만은 여성이 직접 걸 수 있는데, ‘남편이 외도를 했고 상간녀를 법정에 불러낼 수 있을 때’만 소송이 가능했다. 이에 영국 제국 전체에서 1년에 여성 주도 하에 여성이 벌인 이혼소송이 통과한 경우가 한 건도 없는 해가 굉장히 많았다”며 캐릭터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여자들은 ‘억울하고, 억눌려있고, 상속권의 제약을 우회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혼은 했지만 이혼에 실패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살해 대상을 ‘유산을 얻어먹기 위해 찾아온 남편’으로 두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요람이 담고 있는 ’거대한 재산 싸움과 뒤엉켜 살기 위해 발악하는 주인공이 진실을 덮어나가는 이야기‘는 시대가 가진 한계에서 완성됐다고도 할 수 있다.
이에 요람의 주인공도 시대 사회적으로는 매몰된 사람이지만, 하녀장과 언니, 하녀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가질 정도로 인간관계는 좋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게 되며 이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이에 플레이어는 사회적 부조리와 살인에서 시작되는 거짓말로 뒤엉키는 관계에서 오는 ‘찝찝함’을 직면하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팀 요람, 이번에는 번역이 아닌 우리의 작품을 원했다
팀 요람은 아트 3인, 프로그래머 1인, 기획과 스토리 등을 총괄하는 림포레스트 대표 등 총 다섯 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림포레스트 대표의 표현으로 ‘주변에 싹싹 빌어가며 모은’ 2년 전 초기 팀 구성 당시부터 프로그래머의 변경이 꽤 잦았는데, 다행스럽게도 다른 인디게임 개발팀과는 달리 시작부터 풍부한 아트 인력을 가지고 있어 이 장점을 내세울 수 있는 비주얼 노벨 장르를 택하게 됐다.
림포레스트 대표가 팀 요람을 꾸리게 된 계기는 게임 ‘쓰르라미 울 적에’ 시리즈 번역 프로젝트였다. 모델러로 회사를 다니는 동안 ‘하고 싶은 건 게임을 만드는 일이었지, 거대한 게임의 톱니바퀴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 하지만 1, 2편 번역에 1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했을 때, ‘나도 30대가 되어 가는데 시간을 여기에 쏟는 게 맞나’라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유명 스트리머의 실황으로 번역이 알려지자 자원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해 50명 규모 번역 팀의 팀장이 되어버렸다.
프로그래머나 전문 번역가 지망생, 영상제작자도 모이며 팀이 거대해지고, 이들과 함께 오랜 시간 번역을 이어나가며 고생을 하고 나니 팀원들에게 문득 감사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에 마지막 8편 번역에는 번역팀 스탭롤을 작게 만들었다. 그런데, 게임을 즐긴 사람들로부터 스탭롤을 보고 번역 팀에게 “덕분에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등의 말을 듣게 됐다.
림포레스트 대표의 비유에 따르면 이는 마치 ‘회로가 타는’ 기분을 전했고, “이 감정을 내 작품을 통해서 겪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원동력이 되어줬다. 때마침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팀 프로젝트가 접히게 되며 퇴사를 선택하고 팀 요람을 만들게 됐다.
물론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프로그래머를 찾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부침을 많이 겪었다. 지속적으로 프로그래머가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자 흔들리기도 했다. 더해, 출근해 한 자리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디스코드나 카톡을 통해 소통하다보니 작업 진척 상황 및 팀원 개인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작업 프로세스의 실시간 공유와 피드백이 회사처럼 체계적이고 즉각적이지 않다보니 팀원 간 관계 확립도 어려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최대한 많은 소통을 위해 가끔씩이나마 실제로 얼굴을 보고 미팅을 진행했고,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과 조율을 이어나갔다. 소통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는 성과로 이어졌다. 현재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구인한 현재의 프로그래머도 정식 팀원이 되었고 팀이 안정화되며 개발 궤도가 순탄해졌다. 이제 팀 요람의 목표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전달한 프로젝트 일정에 맞춰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다.
거짓말의 시작을 담은 1챕터, 오는 5월 공개
정식 출시된 요람 본 편은 총 6챕터로 만나볼 수 있다. 텍스트가 상당히 긴 게임인 만큼 데모에 등장한 밀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이에 정식 출시판의 플레이타임은 약 20시간 내외로 전망 중이다. 이미 1, 2챕터는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으며, 3~6챕터의 플로우차트와 기틀을 잡은 상태다. 이미 대화, 저택 이동, 시신 은닉, 추리 등의 전반적 시스템은 완성된 상태다. 아트는 저택 1층의 1/3과 캐릭터 디자인을 끝맺은 상태다.
5월 중 공개 예정인 데모는 요람 1챕터의 85% 정도를 담았다. 개발진 기준으로 1챕터의 데모 플레이에만 3시간에서 3시간 반 가량이 걸렸다 하니 짧지만은 않다. 1챕터만 웹소설 30화에 가까운 분량인지라, 이에 개발진은 일부 편집을 거쳐 데모를 공개할 예정이다. 림포레스트 대표는 “심심한 연출을 보강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여건이 된다면 작곡가와의 컨택을 통해 BGM을 추가하는 등 데모 퀄리티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