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엔진 전문가? 개발자 2차 전직이죠' 에픽 신효종 차장
2013.11.19 20:33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여기 다소 화려하고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현무엔터테인먼트나 프로메테크 같은 벤처기업에서부터 CCR과 블루사이드 등 중견 개발사, 그리고 세계적인 대형 게임업체인 반다이남코게임즈와 에픽게임스에 이르기까지. 3개국을 오가며 각종 게임업체를 경험했으며, 게임 개발자로 시작해 현재는 언리얼엔진 개발을 맡고 있다. 바로 에픽게임스코리아의 신효종 차장이다.
평생직장 개념이 희미한 IT업계에서 이직이란 그리 희귀하지 않지만, 신효종 차장의 경력은 꽤나 독특하다. 게임 개발에서 엔진 개발로 분야를 옮겨 가면서 한국과 일본, 미국의 게임업체에서 다양한 기업문화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게임메카는 각종 기업의 공개채용이 한창인 11월, 그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겪었다고 자부하는 신효종 차장을 만나 그가 겪은 각국 기업 문화의 차이, 게임 개발 인생, 그리고 게임엔진 개발자가 되기 위한 조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6개의 회사를 거쳐 현재 언리얼 엔진 개발을 맡고 있는 에픽게임스 신효종 차장
한국에서 일본, 그리고 미국 회사로…
신효종 차장의 첫 직장은 99년, 대학 시절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차린 벤처회사 현무 엔터테인먼트였다. 입사가 아니라 창업이었기에 스펙과 관련해서 딱히 준비했던 것은 크게 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꾸던 그는 현무 엔터테인먼트에서도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스타크래프트’ 처럼 유명한 전략 시뮬레이션게임 개발을 시도했으나 현실적인 문제로 온라인 보드게임이나 외주 작업에 주로 매진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그는 팀 단위로 CCR에 이직해 게임 개발 업무를 맡는다. 사실상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첫 직장이었다. 서버/클라이언트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온라인게임 초창기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업무를 동시에 맡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후 그는 우연히 도쿄대에서 2D 스케치 베이스의 3D 모델링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2005년 CCR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그는 해당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가기 위해 입학 시험을 준비하고, 도쿄대 석사 과정에 입학해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연구에 매진한다. 석사 과정을 마친 후 그는 친분이 있던 벤처회사 프로메테크 소프트웨어에 들어가 유체역학 시뮬레이션 관련 연구/개발에 매진한다. 이 때 반다이남코 등과 협업 작업을 했고, ‘철권 6’ 의 물/대기/모래 시뮬레이션을 개발하며 본격적인 게임엔진 개발을 시작했다.
엔진 개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2009년 반다이남코게임스를 거쳐 2011년에는 국내 게임업체 블루사이드로 이직하며 물리엔진과 애니메이션 엔진 개발에 집중한다. 그리고 2013년 초, 세계적 엔진개발사인 에픽게임스에 입사해 현재 언리얼엔진 개발 분야에서 전력을 쏟고 있다.
▲ 세계 최고의 게임엔진 중 하나인 '언리얼엔진' 의 개발사 에픽게임스
15년 간 6개 회사 이직, 게임 개발에서 엔진 개발까지
그의 이직 과정이 늘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프로메테크 소프트웨어에서는 자신이 속했던 게임사업부가 분리 독립되면서 직장의 안정성이 흔들렸으며, 반다이남코게임즈에서 재직 중이던 2011년 봄에는 도쿄에서 대지진을 직접 겪은 후 가족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블루사이드 역시 올해 초 자금난으로 인해 재정적으로 힘들어졌고, 때마침 세계 최고의 엔진개발사 에픽게임스로 이직 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현무 소프트웨어 입사와 CCR 이직에 이르기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임업계 초창기였기에 체계적인 인사 시스템이 없었던 데다, CCR 이직은 개인이 아닌 팀 단위였기 때문에 면접 한 번 만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석사 학위 취득 후 프로메테크 소프트웨어 취직에 이르는 과정 역시 예약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 없었다.
오히려 경력이 쌓인 후의 이적 과정에서 더욱 꼼꼼한 시험을 거쳤다. 반다이남코로의 이직 과정에서는 내부 관계자와의 상담까지도 끝난 상태였지만, 전문 지식 시험에서부터 적성검사,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까지 모든 경력직 채용 과정을 FM으로 진행했다. 블루사이드와 에픽게임스 코리아 역시 반다이남코만큼은 아니었지만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다. 물론 면접은 해당 업체가 속한 국가에 따라 한국어/일본어/영어로 진행되었으며, 해당 국가의 어학 실력은 기본으로 요구되었다.
“반다이남코에 이력서를 넣으니 바로 전화가 와서 현 직장에 사표를 넣으라는 얘길 하더군요. 이때만 해도 이직이 결정된 줄 알았는데, 막상 사표가 수리되었다고 알리니 대답이 ‘이제부터 채용 프로세스를 시작하겠습니다’ 였습니다. 그 때부터 100문제 짜리 시험지를 풀고, 1시간 반 동안 면접을 보고, 일본어 적성검사에다 임원면접까지 다 거치는데, 막상 저에게 오퍼를 던진 부장은 그 모든 과정에서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더군요. 아마도 인맥을 통한 취업 결정을 막기 위한 시스템으로 보이는데, 이 때 ‘일본 회사는 철저하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신효종 차장은 14년 동안 6개의 회사에 재직하며 다양한 기업 문화를 겪어 왔다. 자연히 한국과 미국, 일본의 기업 문화 차이를 체험하며 다양한 차이를 봐 왔다.
그가 평가한 일본 기업의 경우 한국과 같이 수직적 기업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남 앞에 나서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입는 것을 싫어하는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이에 대해 신효종 차장은 “일본 사람들은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더군요. 당시 프로젝트 리더 분도 도쿄대 박사로 실력이 출중한 분인데, 팀원 통솔이나 지시 등을 잘 못 했습니다. 옆에서 보니 안타깝고 해서 자꾸 대신 지시를 내리곤 했는데, 어쩌다 보니 6개월마다 승진을 거듭해 결국엔 게임사업부 부장까지 올라가더군요.” 라고 프로메테크에서 겪은 일본 조직 문화를 설명했다.
세계적인 게임개발사이자 ‘개발자의 천국’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반다이남코게임즈에서의 경험도 인상깊다. 반다이남코는 하루 7시간 30분씩 한 달(약 20일)의 업무시간만 채우면, 그 이상의 초과근무를 회사 차원에서 만류했다. 이유는 야근을 많이 하면 회사 측의 야근수당 부담이 늘어나고, 일정 수치를 넘어갈 시 야근 사유를 조사하거나 건강체크 등을 실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기 때문. 덕분에 신 차장은 반다이남코에서 야근을 한 경험이 손에 꼽힌다고 한다.
“야근을 많이 하면 윗사람이 불려가 혼이 나더군요. 그만큼 업무 시간에 집중하라는 뜻이죠. 야근을 하면 오히려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구조다 보니, 덕분에 회사 자체에서 야근에 대한 불만도, 요구도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도 피해를 받기 싫어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회사에도 적용된 거죠.”
▲ '개발자들의 천국' 이라고 불리는 반다이남코 본사 로비 전경
반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에픽게임스의 경우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한 수평적 구조를 통해 사원들의 책임감을 부추기는 형태의 기업 문화를 갖고 있었다. 업무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업무의 담당자에게 일이 자연스럽게 넘어오는 형태며, 대부분의 일을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처리하지만 개인의 모든 업무가 평가 대상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책임감이 주어지는 구조다.
실제로 에픽게임스의 경우 6개월마다 한 번씩 전 사원이 주변의 모든 사람을 평가하는 기간이 있다. 몇몇 국내 기업의 경우 자신의 직속 상사만 잘 구슬리면 승진에 문제가 없지만, 에픽게임스는 모든 사원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개인에 대한 최종 평가가 내려지는 만큼 개인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자기 발전이나 일 집중에는 확실히 좋지만 그만큼의 부담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스템이다.
그는 이 같은 수평적 구조의 대표적 시스템으로 에픽게임스코리아 면접 일화를 들었다. “에픽게임스 면접은 굉장히 독특했습니다. 다른 회사는 실무자 면접 후 임원 면접의 순으로 진행되는데, 에픽게임스는 지사에 있는 모든 사원들과 면접을 봤죠. 면접만 3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이는 에픽게임스코리아 모두와 잘 지낼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한 것으로, 사원이 사원을 평가하는 시스템과도 맥을 함께 한다.
게임엔진 전문 개발자가 되려면
신효종 차장이 본격적인 게임엔진 개발을 시작한 것은 프로메테크에서 재직 중, 반다이남코의 외주 작업을 맡으면서였다. 게임 업계에 뛰어든 지 거의 10년이 지났을 때였다. 당시 ‘철권 6’ 개발팀이 요구한 것은 ‘버추어 파이터 5’ 보다 품질이 좋은 파도 및 모래, 대기 시뮬레이션이었다. 당시 만들어진 엔진이 바로 ‘옥타브 엔진’ 이었다.
이후 그는 UI를 전공하면서 스케치와 물리 엔진을 접목한 옥타브 엔진의 캐주얼 기능을 선보였고, 게임 개발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반다이남코 이직 후에는 기술부에서 사내 물리엔진 개발 및 기술지원 업무를 맡았고, 철권, 소울칼리버, 에이스컴뱃, 괴혼 노비타 등을 서포트했다. 이어 블루사이드에서는 ‘킹덤 언더 파이어2’ 의 페임테크2 엔진(현 블루사이드 엔진)과 차세대 애니메이션 엔진을 개발하며 게임엔진 개발자로서의 전문성을 한껏 높였다.
▲ 현재는 '블루사이드 엔진' 으로 이름을 바꾼 '페임테크2 엔진'
신 차장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엔진 개발 분야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신입 개발자가 쉽사리 뛰어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간혹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석/박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하며 연구/개발에 몰두한 사람이 많다. 이유는 게임 개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엔진 개발이 어려운 것은 폭넓고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미경력자가 뛰어들기엔 내가 개발하는 엔진을 쓰는 사람이 이 기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임 개발을 직접 경험해 보고 오는 것이 중요하죠. 엔진 개발이라고 통틀어 말하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렌더링이나 물리, 서버 등 다양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진 ‘스페셜리스트’ 가 되어야 합니다. 일단 게임업계에 뛰어들어 이것저것 체험해보며 내가 깊게 들어가야 할 분야를 정하고, 한 분야를 깊게 파면서 최신 논문도 읽고, 각종 발표회에 참가하며 최신 기술도 계속 접해보고, 학회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 중인지도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게임으로 치면 2차 전직 직업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게임 개발자, 혹은 엔진 개발자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뭐가 되건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업의 안정성이나, 야근 유무, 직업 같은 것 보다 말이죠. 더불어 자유로운 관점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게임 학원이나 학과 등에서 교육을 받는 경우도 많은데, 게임을 공부로 바라보기보다는 디지털엔터테인먼트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더 재밌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