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있고 바람이 있다… 언리얼3 초월한 ‘블레스’ 월드
2013.12.05 17:21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최근 온라인게임들의 그래픽 품질이 콘솔게임과 비슷한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네오위즈게임즈의 자회사 네오위즈 블레스스튜디오가 개발 중인 ‘블레스’ 는 유달리 눈에 띄는 존재다. 마치 네오위즈의 우수한 개발력을 입증하겠다는 염(念)이라도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블레스’ 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게임의 무대가 되는 웅장하고 사실적인 배경이다. 실제로 ‘블레스’ 의 신규 스크린샷이나 영상 등을 보면 배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한 풍경이 게임 속에서 구현된 것을 보고 있자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곤 한다. 그러나 ‘블레스’ 의 사실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블레스’ 의 세계를 뒷받침하고 있는 다양한 시스템들이 존재한다.
게임메카는 ‘블레스’ 의 세계를 더욱 확장시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블레스 스튜디오의 황선일 Lead TA(테크니컬 아트디렉터)와 프로그래밍 서버파트의 장세원 파트장을 통해 ‘블레스’ 의 놀라운 세계 ‘블레스드 월드(Blessed World)’ 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매력적이고 방대한 '블레스' 의 지역들
울릉도 9배 면적의 광활한 맵, 노가다만으로는 어렵다
‘블레스’ 의 월드 맵은 매우 넓다. 맵의 기본 단위는 한 면이 1.27km인 정사각형의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전체 월드는 20x20(총 400개)의 지역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즉 ‘블레스’ 월드의 한쪽 면은 25.4km로, 해양을 포함한 전체 면적은 645평방킬로미터. 울릉도 면적의 9배에 달한다. 이 거대한 맵의 모든 곳이 이동 가능한 지역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도 어설프게 구현할 수 없다.
단순히 넓기만 한 것이 아니다. ‘블레스’ 의 월드는 세력에 따라 대초원과 밀림, 사막으로 이루어진 남부 지역, 침엽수림이나 설원 등으로 덮여 있는 북부 지역으로 나뉜다. 게임 내 각 지역과 도시는 아프리카의 사바나 대초원이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남부 스페인의 도시 등 매력적인 실제 지역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풀이나 깃발, 빛과 그림자, 판타지적인 지형과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 등이 섬세하게 구현되어 살아 숨쉬는 듯한 인터렉티브 월드를 만든다.
이러한 세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유저의 입장에서는 제한된 컴퓨터 사양에서도 넓고 깊은 시야로 세계를 둘러볼 수 있어야 하며, 개발자 입장에서는 대규모의 작업을 최대한 빠르고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블레스’ 에는 수많은 제작 기법이 도입되었다.
▲ '블레스' 의 전체 맵, 실제 세계에 비유하면 한쪽 면이 25.4km의 지도다
가볍고 생동적인 ‘블레스’ 의 월드
먼저 가볍고 생동적인 월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법이 사용되었으며, 그 중 주목할 만한 기법 몇 가지를 소개한다. 시간 변화에 따른 빛의 조절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는 ‘타임 오브 데이(TOD)’, 날씨와 구름 변화 등을 조합하여 무한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블레스 스카이박스 시스템(BSS)’, 그리고 정교한 물리적 움직임을 가볍게 처리하는 ‘월드 포지션 옵셋(World Position Offset)’ 이 그것이다.
먼저 ‘타임 오브 데이’ 는 게임 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비주얼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한 장치다. ‘블레스’ 는 새벽/낮/노을/밤 4가지 시간대에 따라 빛의 강도나 색상이 변하며, 그림자의 형태 및 길이, 색상 등도 차이를 보인다. 황선일 디렉터는 “언리얼에서 지원하는 라이팅 시스템(라이트매스)는 정적 조명 시스템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대 별로 다른 조명을 표현하고 싶었고, 결국 다양한 시도 끝에 라이트매스 기능을 대폭 수정해 실시간 조작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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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계도 존재한다. 바로 태양이 움직이는 모습, 즉 광원의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황선일 디렉터는 “라이트매스는 그림자를 고정된 텍스쳐로 만들어 저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광원이 360도로 돌면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가 변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 다른 툴을 사용하면 빛의 방향을 360도로 돌릴 수 있었지만, 대신 그림자 표현의 깊이가 떨어졌다. 결국 그림자의 회전과 섬세한 표현 중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대신 안개나 빛의 색상, 조명의 온/오프, 창문의 불빛 등을 구현해 깊이를 더했다” 라고 밝혔다.
◀ 네오위즈 블레스스튜디오의 황선일 Lead TA(테크니컬 아트디렉터) |
▲ '블레스' 의 시간 변화를 보여주는 '타임 오브 데이' 영상
두 번째 ‘블레스 스카이박스 시스템’ 은 시야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하늘 표현에 대한 색다른 접근법이다. 일반적인 게임은 하늘의 모양을 텍스쳐로 일일히 그렸기에 다양한 표현이 어려웠고, 용량도 많이 차지했다. 그러나 ‘블레스’ 는 다양한 모양과 색상, 크기를 가진 구름을 일종의 수치 형태로 구현했다. 이를 실시간으로 조합하여 무한한 종류의 하늘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궁무진한 변화를 가능케 해 준 것은 건축 시각화 툴 ‘루미온’ 이다. ‘블레스’ 개발팀은 초창기에만 해도 하늘 텍스쳐를 일일히 그렸지만, 다양한 환경 표현과 변화에 한계를 느꼈다. 그러던 와중 발견한 ‘루미온’ 툴은 다양한 하늘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적합했다. 장세원 서버파트장은 “루미온 툴은 용량도 부담될 수준이 아니며, 향후 패러미터가 더 추가되더라도 용량의 증가가 거의 없다.” 라며 “루미온의 장점 중 하나는 하늘이 스위칭되는 등의 상황을 잘 처리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하늘의 변화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라고 ‘블레스 스카이박스 시스템’ 의 장점을 설명했다.
▲ '블레스' 의 하늘 변화를 담당하는 '스카이박스 시스템' 소개 영상
마지막으로 동적인 월드를 만들어주는 핵심 기능 ‘월드 포지션 옵셋’ 이 있다. 이 기능은 물리 효과에 흔히 쓰이는 피직스(PhysX)를 대신해 사용된 언리얼엔진의 기능 중 하나로, 동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잘 표현해 줄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의도에 따른 표현과 제작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블레스’ 의 모든 천막이나 깃발, 풀 등은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플레이어와 상호 작용을 하고, 반면에 CPU에 걸리는 부담은 훨씬 줄어들었다.
부담은 적게, 시야는 넓게
위에서 소개한 기능들은 ‘블레스’ 의 맵에 생동감을 더하는 요소다. 그러나 이렇게 구현한 필드를 한 눈에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사실 필드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전체 맵을 모두 읽어들이고, 이를 한 화면에서 동시에 출력하면 된다. 그러나 게이머들의 PC사양을 고려하면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개발팀은 시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전체 월드를 일정 규격으로 나눴다.
먼저 맵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중요도에 따라 S, A, C 등의 등급으로 구분했다. S등급은 가장 멀리서도 볼 수 있는 등급으로, 산이나 계곡, 바다 등의 지형이 여기에 속한다. 그 외에 나무나 풀, 바위, 건물 등 가까이서 상세히 묘사할 필요가 있는 오브젝트는 그보다 낮은 A나 C등급으로 놓아 따로 관리했다. 때문에 지형의 경우 타 오브젝트와 달리 훨씬 멀리에서도 감상할 수 있으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A나 C등급의 오브젝트가 차츰 드러나며 상세한 표현이 이루어진다.
▲ 지형과 일반 오브젝트는 분할 단위 자체가 다르다
재미있는 점은, 초대형 건물이나 마을, 성 같은 경우 기본적으로 A~C등급임에도 불구하고 지형과 같이 S등급 거리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Massive LOD’ 다.
‘Massive LOD’ 는 성이나 마을, 대도시 등의 거대 건축물을 먼 거리에서 쳐다볼 때, 세세한 모델링을 불러오는 대신 랜드마크처럼 단순화된 구조물로 대체해 보여준다. 단순화된 구조물들은 멀리서 보면 원래 모습과 차이가 거의 없으며, 거리가 일정 이하로 좁혀질 경우 자연스럽게 원래 리소스로 대체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대도시나 성의 모습을 멀리서부터 확인할 수 있으며, 퍼포먼스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되어 사양 최적화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 Massive LOD로 제작된 거대 건축물들, 개당 하나의 오브젝트만을 차지한다
▲ Massive LOD 적용 전(좌)과 후(우) 비교, 비주얼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부담은 줄어들었다
황선일 디렉터는 “지형의 경우 건물보다 훨씬 멀리 그려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실제 세계에서도 멀리 있는 건물은 잘 안 보이지만 산이나 계곡 등은 멀리까지 보여지지 않는가” 라며 “Massive LOD를 통해 대도시를 지형만큼 멀리서부터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현실성도 살리고 퍼포먼스도 절약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개발 속도 극대화를 위한 편의 시스템들
앞서 설명했듯 ‘블레스’ 의 세계는 넓고 세밀하다. 여기에 모든 사물과 상호 작용이 가능한 심리스 월드를 지향하다 보니, 자연스레 개발에 드는 시간과 노력도 엄청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블레스’ 에는 콘텐츠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몇 가지 기법이 적용되어 있다. 개발진 내부에서의 의사소통을 도와주고, 개별 작업자 단위에서 퍼포먼스나 속도 메모리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등의 기능들이다. 그 중 특히 제작 공정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고 게임의 사실성을 높여 주는 요소 세 가지를 꼽자면 ‘월드 머신’ 과 ‘피봇 페인터’, 그리고 ‘월드 윈드 패턴’ 이다.
‘월드 머신’ 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지형 만들기를 손쉽게 해주는 지형 제작 툴이다. 이전에는 지형을 만들 때 평면 위에 브러쉬질을 하며 높낮이를 조절하고, 산과 바다를 만든 후 일일히 세부 효과를 부여하는 등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그러나 ‘월드 머신’ 툴은 그 절차를 대폭 간략화했다. 황선일 디렉터는 “산을 하나 만들고 싶을 땐 선을 하나 쭉 그으면 산맥처럼 지형이 솟아오른다. 여기에 다양한 필터를 적용하면 비가 와서 지형이 침식된 효과 등도 한 번에 낼 수 있다” 라며 “작업 시간을 많이 낮춰줄 뿐 아니라, 품질 역시 사람 손으로 했을 때보다 좋다” 라고 귀뜸했다.
‘피봇 페인터(Pivot Painter)’ 는 에픽에서 제공하는 MaxScript 툴로, 나뭇가지와 잎사귀의 흔들림을 자연스럽게 해 준다. 이 툴을 이용해 나무를 지탱하는 큰 기둥, 거기서 파생된 굵은 기둥, 끝에 있는 잔가지, 그리고 바람을 받는 나뭇잎 등을 계층화하고 축을 지정해 놓으면 바람이 불어도 잎은 흔들리지만 굵은 가지는 적게 움직이고 기둥은 흔들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 황선일 디렉터는 “예전에는 나무의 애니메이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나무에 뼈를 심어서 움직이게 하기도 했는데, ‘피봇 페인터’ 를 사용하면 훨씬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다” 라고 밝혔다.
▲ 나뭇가지와 풀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는 '피봇 페인터'
마지막으로 ‘월드 윈드 패턴’ 시스템이 있다. 일반적인 MMORPG에서는 바람이 아예 구현되지 않거나, 구현되더라도 방향과 세기만 존재했다. 하지만 ‘블레스’ 에서는 아티스트가 원하는 바람결의 모양과 패턴을 텍스쳐의 형태로 제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간이나 지형에 따라 다양한 바람이 불게 되고, 더욱 자연스러운 필드 표현이 가능하다.
장세원 파트장은 ‘월드 윈드 패턴’ 에 대해 “유저가 바람을 인지할 때는 풀이나 나뭇잎, 먼지 등의 움직임을 봤을 때다. ‘블레스’ 의 오브젝트들은 한층 사실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바람이 적용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월드 윈드 패턴’ 은 그래픽 아티스트가 다양한 표현을 텍스처 형태로 정의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게임의 다양성을 더하는 데 한층 도움을 줄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 게임 내 바람의 움직임을 만드는 '월드 윈드 패턴' 소개 영상
마지막으로 황선일 PD는 “지금까지 설명드린 시스템들은 개발자가 게임을 순조롭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제작 기반이다. 이를 바탕으로 ‘블레스’ 의 더 멋진 모습을 순조롭게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라며 “최적화 작업 역시 공개서비스 때까지 최대한 노력해 일반 컴퓨터에서도 부담 없이 ‘블레스’ 의 월드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라고 전했다.
▲ 네오위즈 블레스스튜디오의 프로그래밍 서버파트 장세원 파트장(좌)과 리드TA 황선일 디렉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