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프, 게이머가 원한 것은 ‘강도’가 아닌 ‘도둑’이다
2014.02.28 15:22 게임메카 불꽃괴수
‘씨프’ 시리즈 첫 작품인 ‘대도: 검은 음모’는 굉장히 특이했던 게임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진 삼국무쌍’처럼 혼자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당시 1인칭 시점 액션 게임 주류에 반기를 든 ‘반항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총기와 거리가 먼 중세 배경에서 허약한 맷집과 공격력을 갖춘 주인공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적막과 그림자 밖에 없다. 무기는 블랙잭과 활 그리고 최후의 수단인 칼 한 자루뿐. 처음 게임을 진행했을 때 멋모르고 경비병과 2:1로 전투를 벌이다 순식간에 죽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몇 번의 실패를 겪은 뒤에 순찰 중인 경비병의 뒷통수를 블랙잭으로 강타해서 실신시키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경비병을 쫓아가서 열쇠꾸러미를 몰래 채왔던 찰진 손맛 역시 기억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잠입 액션’은 이제 우리에게 친숙한 장르 중 하나다. 유서깊은 명작 시리즈가 된 ‘메탈기어’를 비롯하여 후드를 뒤집어쓰고 암살을 가장한 무쌍으로 적을 제거하는 ‘어쌔신 크리드’가 대작으로 주목 받는 것을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서론이 좀 길었다. 이른바 ‘원조’라고 할 만한 잠입 액션 게임이 10년만에 귀환했다. 원작 ‘대도: 검은 음모’를 재해석한 리부트 타이틀 ‘씨프’를 지금부터 면밀히 살펴보자.
▲ 잠입 액션 장르의 본격적인 포문을 열어제낀 '메탈기어'와 '씨프'
하나는 콘솔(좌), 다른 하나는 PC(우)에서 태동을 알렸다
맞춤형 난이도, 적당하게 조절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요소는 바로 ‘난이도 선택’ 기능이다. 난이도는 ‘로그 / 시프 / 마스터’ 등 3가지로 나뉜다. 각각 ‘쉬움 / 보통 / 어려움’을 뜻하며, 하단에 별도로 위치한 ‘커스텀’을 선택하면 자신이 원하는 난이도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난이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경우, 기척을 들키기만 해도 ‘게임 오버’ 화면을 보게 된다. 극한의 잠입액션을 추구하는 유저라면 자체 난이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게임 플레이에 도전해보자.
▲ 취향에 따라 입맛대로 즐겨보자
유령과 기회주의자 혹은 학살자. 당신의 선택은?
‘씨프’의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면 어떠한 행동을 중점적으로 진행했는가에 따라 챕터 클리어 후 총 3가지 평가를 받게 된다. 적에게 한 번도 들키지 않고 챕터를 클리어하면 ‘유령(Ghost)’을, 소매치기나 불을 끄는 행위로 적의 빈틈을 노리는 방식의 플레이를 많이 하면 ‘기회주의자(Opportunist)’, 이와는 반대로 적을 전부 학살하거나 기습으로 무력화한다면 ‘학살자(Predator)’의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닐 경우 ‘잡종(Hybrid)’의 평가를 받아 위의 세 항목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파고들기 요소에 신경 쓰는 유저라면 플레이 시에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서브 퀘스트로 볼 수 있는 ‘고객 의뢰’에서는 평가를 받는 요소가 존재하지 않지만, 의뢰에 제시된 과제를 만족할 경우 추가 보수를 획득할 수 있으므로 여유가 있을 경우 도전하는 것이 좋다.
▲ 평가는 당신의 행동에 따라 달렸다
▲ '유령'을 노렸지만 '잡종'이 되어버린 현실
▲ 깔끔하게 의뢰 완료!
▲ 때로는 양립할 수 없는 과제를 받기도 한다
대도의 비결은 바로 집중력의 차이! 포커스 시스템
이번 작품에서는 ‘포커스’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포커스’를 사용하면 보물의 위치와 트랩 및 경비병의 위치, 이동 가능한 지형 등 주인공 게럿의 행동에 반응하는 대상이나 지형지물, NPC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의 진행이 어렵다 싶을 때에는 ‘포커스’ 시스템을 활용하자. 숨겨진 보물이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포커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게이지’가 필요하며, ‘게이지’가 모두 소모되었을 경우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남발하기 보다는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한다. ‘포커스’는 ‘F’ 키로 발동 및 해제할 수 있다.
또한 ‘포커스’는 ‘업그레이드’를 통해 수색과 탐색 외에 은신, 전투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포커스’는 ‘포커스 포인트(FP)’를 소모하여 총 8번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포커스 포인트’를 어떻게 분배했느냐에 따라 경비병의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혹은 진정한 학살자로 각성하는 등 다양한 패턴의 게럿을 육성할 수 있다. 육성 요소를 좋아하거나 ‘포커스’ 사용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포커스 포인트’는 미션 수행 중 훔친 돈으로 구입할 수 있다.
▲ 위험도에 따라 '파란색 / 노란색 /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 파란색으로 표시된 '기름통'과 그 곳에서 새어 나온 '기름'
▲ 거지 여왕과의 이벤트 이후 '포커스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 전투(Combat) 포인트에 투자하면
교전 시 포커스 상태에서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다
초심자도 쉽게 입문하는 대도의 길!
‘포커스’는 복잡한 맵에서 길을 찾지 못하거나 숨겨진 아이템을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초심자를 위한 기능이다. 이러한 초심자를 위한 배려는 ‘포커스’ 외에도 게임 내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기능과 시스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임무 진행 시 목표의 위치 정보를 표시해주는 ‘웨이포인트’와 ‘미니맵’ 기능은 전작들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배려다. 또한 네비게이션 기능 활성화 시에는 해당 지형에서 사용 가능한 모든 키가 표시되기 때문에 특정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게임 플레이가 막히는 초심자들도 아무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다.
▲ 옵션에서 On/Off 할 수 있다
▲ 내가 가야 할 위치가 동그라미로 표시된다
▲ 기존 시리즈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미니맵도 지원한다
▲ 네비게이션을 활성화시키면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액션을 볼 수 있다
10년을 기다린 것에 비하면 불만족스럽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10년을 기다려 등장한 ‘씨프’는 반갑긴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씨프’의 제작진들은 변화한 유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를 도입하려 했지만 이는 과도한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언급한 ‘포커스’ 등 각종 편의 기능 추가는 초보자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의요소 덕분에 ‘보물을 찾아 여기저기 뒤지는’ 게임 특유의 재미가 많이 사라졌다. 손쉽게 제공받는 목표물의 위치 정보 및 이동 경로 안내는 그저 ‘길 따라 쭉 진행하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 마을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챕터에 등장하는 맵은 너무 간결하다
맵(레벨) 디자인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직선형 구조의 맵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람에 ‘씨프’ 시리즈 특유의 맛이 많이 사라졌다. 그나마 ‘챕터 1’ 중간에 등장하는, 다양한 진입루트를 갖춘 ‘보석상’ 정도가 기존의 느낌을 살렸을 뿐 이후 맵들은 일직선에 가까운 구조로 이루어져 눈 앞에 있는 길만 쭉 따라가도 게임 플레이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또한 일정 구간을 지나면 기존에 진행한 길로 돌아갈 수 없는 구조 역시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행동에 많은 제약을 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투 난이도가 대폭 하락한 점 역시 ‘씨프’ 시리즈만의 개성을 잃은 느낌이다. 기존 ‘씨프’는 적과의 전투를 최대한 피해 목표물을 취하는 플레이를 권장했지만, 이번 작품은 다르다. 블랙잭 서너 번에 나가 떨어지는 적들과 ‘포커스 업그레이드’를 비롯한 각종 전투 장비 업그레이드 등 다양한 요소를 추가하여 ‘잠입’보다는 ‘액션’을 강조했다. 경비병에게 들켰을 때의 긴장감이 많이 줄어들면서 ‘잠입’ 액션이 아닌 잠입 ‘액션’으로의 측면을 강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세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게럿이 이긴다
▲ 난이도를 낮춘 장본인 중 하나 '장비 업그레이드'
우리가 원했던 건 ‘강도’가 아닌 ‘도둑’이었다!
성공한 게임들의 재미요소를 참고하여 게임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에 휘둘려 정작 ‘씨프’ 시리즈의 정체성을 많이 잃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단순명료하고 가벼운 플레이와 간결한 진행 방식은 다른 게임에서 충분히 볼 수 있었던 요소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근래 들어 성공한 잠입 액션 게임 대부분은 ‘씨프’ 시리즈에게서 그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유저들이 ‘씨프’에 원했던 것은 영화 같은 스토리와 연출이 아니다. 각종 편의요소를 통한 쾌적한 플레이도 아니다. ‘어쌔신 크리드’ 등 강력한 암살자의 전투능력 역시 아니다. 그저 기존 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경비병의 눈을 피해 대저택의 진귀한 보물을 쓱싹하는 짜릿함.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대했던 ‘씨프’의 재미다. 이러한 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이 너무나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