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뜨거] 하나의 당당한 스포츠로, e스포츠 첨병 ‘롤드컵’
2015.10.05 18:42 게임메카 김영훈 기자
[HOT뜨거]는 지난주 가장 뜨거웠던 게임계 이슈를 누구나 알기 쉽고 자세하게 풀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1일(목), ‘리그 오브 레전드 2015 시즌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2015)’가 프랑스 파리에서 성대한 막을 올렸습니다. 바야흐로 전세계에서 모여든 16개 팀 소속 총 96명에 달하는 프로게이머가,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 달간 진검승부를 펼칩니다.
이번 대회는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영국 런던, 벨기에 브뤼셀, 독일 베를린까지 유럽 주요 도시를 차례로 순회합니다. 각국에는 SSE 웸블리 아레나,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 등 최대 규모의 경기장이 완비됐을 뿐 아니라, 현지 호응도 뜨거워 4만여 명의 유료 관중을 들였던 예년을 뛰어넘는 흥행이 전망됩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e스포츠 대회가 유럽 전역을 무대로 펼쳐지고, 수만 명의 유료 관중을 받는 다는 것은 꿈 같은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게임이 하나의 스포츠로 오롯이 인정받고, 대회 규모도 날로 확장되고 있죠. 과연 롤드컵은 어떻게 전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e스포츠계 대제전으로 거듭났을까요? 이쯤에서 그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 유럽 전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사진제공: 라이엇게임즈)
혜성처럼 등장한 ‘리그 오브 레전드’
‘롤드컵’을 논하려면 우선 ‘리그 오브 레전드’를 알아야 합니다. 북미에서 개발된 이 야심찬 게임은 AOS 혹은 MOBA라 불리는 신흥 장르입니다. 각양각색 캐릭터 중 하나를 선택해 자동으로 진격하는 졸병들과 함께 적을 무찌르고, 건물을 불사르는 PvP 게임이죠. 캐릭터를 육성하고 장비를 구비하는 RPG적 요소와 팀원간 연계, 지형지물을 활용한 전략 등 복합적인 게임성이 특징입니다.
AOS는 ‘워크래프트 3’ 유즈맵 ‘도타 올스타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도타 올스타즈’는 뛰어난 완성도로 호평을 받았지만, 원본 게임이 필요하고 시스템적 제약이 따르는 유즈맵의 특성상 널리 사랑 받지는 못했죠. 라이엇게임즈는 바로 이점에 착안해 ‘도타’의 어렵고 불편한 시스템을 나름대로 개선한 독립적인 게임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2009년 서비스를 개시한 ‘리그 오브 레전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죠.
당초 17명의 챔피언과 함께 출발한 ‘리그 오브 레전드’는 꾸준한 업데이트로 아름아름 유저층을 불려나갔습니다. 특히 연고지 북미를 비롯한 여러 서구권 국가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워크래프트 3’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던 아시아와 달리 서양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제지할만한 변변한 경쟁자가 없었죠.
▲ 2009년 혜성처럼 등장한 흥행작 '리그 오브 레전드' (사진제공: 라이엇게임즈)
롤드컵과 한국 e스포츠, 그 운명적인 만남
흥행몰이에 성공한 라이엇게임즈는 ‘리그 오브 레전드’ 서비스 2년만인 2011년 6월, 드디어 대망의 첫 ‘롤드컵’을 개최합니다. 당시 대회 규모는 오늘날에 비하면 영세하기 짝이 없었는데, 자체적으로 개최하지 못하고 스웨덴 디지털쇼 드림핵 현장에서 진행했죠. 메인 스폰서는 에일리언웨어가 맡아 총상금 10만 달러(한화 약 1억 원)를 걸고, 총 8개 팀이 격돌했습니다. 여기서 최종적으로 우승컵을 거머쥔 팀이 바로 오늘날까지 유럽 최강으로 손꼽히는 프나틱입니다.
‘롤드컵 2011’은 여러모로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의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e스포츠를 낳은 것은 한국이지만, 성장시킨 것은 유럽’이라 할 만큼 유럽은 건실한 e스포츠 산업을 자랑합니다. 그러한 유럽 e스포츠의 심장부 드림핵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는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프나틱의 성공을 목도한 여러 e스포츠 구단들이 너도나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팀을 꾸렸음은 물론이죠.
첫 ‘롤드컵’이 끝나고 반년 후, 드디어 e스포츠 종주국 한국에 올 것이 왔습니다. 2011년 12월 12일, 한국에 상륙한 ‘리그 오브 레전드’는 국내 유저들의 입맛에 딱 맞는 경쟁적인 콘텐츠와 동인층을 사로잡은 매력적인 캐릭터로 순식간에 세를 확장했습니다. 한국 서버는 이미 AOS를 접한 소수 유저층을 뛰어넘어 수많은 학생, 직장인 심지어 게임을 하지 않던 여성들까지 가세하며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 동인계에서 크게 흥하며 2차 창작물은 물론 코스프레도 많이 이루어졌다 (사진제공: )
라이엇게임즈 또한 e스포츠의 산실인 한국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한국 서버의 기록적인 초반 상승세에 고무된 라이엇게임즈는 서비스 개시 한 달만인 2012년 1월 국내 첫 e스포츠 대회 ‘리그 오브 레전드 인비테이셔널’을 개최했죠. 세계 정상급 팀인 북미 CLG와 중국 WE가 원정을 왔으며, 국내 최초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팀 스타테일과 클랜 MiG, EDG가 이에 맞섰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프로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시절엔 세계 e스포츠의 왕좌를 차지했지만, 소위 ‘독고다이’ 성향 때문에 팀단위 게임에선 고전를 면치 못하리란 분석이었죠. 그러나 ‘인비테이셔널’ 결승에서 변방 아마추어팀에 불과한 MiG가 북미를 호령하던 CLG를 박살냈습니다. 국내 유저들의 자부심이 하늘 높이 치솟았고,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의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었죠.
▲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프로게이머들
세계 대회로 성장한 롤드컵, 정상에 선 한국
다시 ‘롤드컵’으로 돌아가죠. ‘인비테이셔널’에서 극적인 승리 이후 곧 한국 프로리그가 출범했고, 같은 해 10월 ‘롤드컵 2012’가 열렸습니다. 한국에서 e스포츠 노하우를 잔뜩 습득한 라이엇게임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으리으리한 대회장을 갖추고, 예년과 비교를 불허하는 총상금 300만 달러(한화 약 30억 원)을 내걸었습니다.
‘롤드컵’이 세계대회다운 규모와 절차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정식 서비스되는 국가들을 크게 6개 지역리그로 구분하여, 각각에 본선 시드를 배당했죠. 2012년에는 북미 3개 팀, 유럽 3개 팀, 중국 2개 팀, 한국 2개 팀, 동남아 1개팀 대만/홍콩/마카오 1개 팀으로 총 12개 팀이 본선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선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아주부 프로스트(현 CJ 엔투스 프로스트)와 나진 소드가 나란히 출전했습니다. 이들은 조별 풀리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며 맹위를 떨쳤지만, 정작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대만의 타이페이 어쌔신에게 연이어 패해 충격을 주기도 했죠. 이 밖에도 경기장 구조상 선수 부스에서 중앙 스크린을 볼 수 있어 부정행위가 횡행하는 등 문제가 발생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 예년과 비교도 안되게 확장된 '롤드컵 2012' (사진제공: 라이엇게임즈)
다행히 경기장 구조 문제는 이듬해 ‘롤드컵 2013’부터 완벽히 해소됐습니다. 2박 3일간 빠듯하게 진행되던 일정도 3주로 대폭 늘어나 선수들의 부담도 완화됐죠. 결승 장소 또한 한층 더 스케일을 키워 LA 킹스의 홈구장 스테이플스 센터를 대관했습니다. 여기에 호주, 브라질, 터키 등 신규 서버에 시드 하나를 배정하는 등 지속적으로 대회 규모를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여줬죠.
e스포츠계에서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는 한국답게, 이번 대회부터는 이례적으로 시드 3개를 가 주어졌습니다. 리그 규모가 현격히 다른 유럽과 북미 정도만이 시드 3개를 받고, 그 거대한 중국조차 2개였던 점을 생각하면 매우 파격적인 대우였죠. 덕분에 셋이나 본선에 이름을 올린 한국팀들은 연승을 거듭한 끝에 SKT T1 K가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 현재까지도 국내 최강팀으로 손꼽히는 SKT T1 K
e스포츠의 첨병, 그저 게임 대회에서 하나의 당당한 스포츠로
‘롤드컵 2013’ 우승은 한국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접한지 근 3년 만에, 스스로 세계 정상임을 완벽히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동시에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이후 하락세에 접어들었던 국내 e스포츠의 열기가 다시금 최정점을 찍는 순간이기도 했죠. 해외 반응을 실감하기 어려웠던 ‘스타크래프트’ 시절과 달리 세계가 함께 주목하고 있다는 짜릿함도 흥행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롤드컵’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간 미국에 머물던 대회 무대를 아시아, 그것도 한국으로 이끌었죠. 그간 WCG 등 대규모 게임대회가 아시아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국을 제치고 한국이 ‘롤드컵’을 유치했다는 것 자체가 국내 유저들에게는 각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다만 이후에 당초 발표된 것과 달리 16강까지는 동남아 지역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밝혀져 빈축을 사기도 했죠.
▲ '롤드컵'은 e스포츠 대회를 월드컵 경기장으로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거행된 ‘롤드컵 2014’ 결승전은 역대 최다 유료 관중인 4만여 명을 들였으며, 19개 언어로 중계되어 최고 시청자 수는 약 1,100만 명에 달합니다. 그저 ‘게임 대회일 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득히 커져버렸죠. 아시아 분산 개최에 이어 이제는 유럽 전역을 무대로 대회를 펼칠 요량이니까요.
현재는 미국 정부 승인으로 프로게이머들도 타 스포츠 선수들과 동일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동서양 주요 국가들의 e스포츠에 대한 인식과 대접 또한 나날이 개선되고 있죠. 이러한 변화의 첨병에 ‘롤드컵’과, 현장을 가득 채운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었음은 두 말할 필요 없습니다. ‘롤드컵’을 첨병 삼아 e스포츠가 차세대 스포츠로 공인되길 바라 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