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닉스의 글로벌 `생존` 스토리 들어보실래요?
2012.09.20 18:31게임메카 정지혜 기자
“괜찮아, 넌 외국에서 먹히는 얼굴이야.”
이게 욕인지 칭찬인지. 검고 긴 생머리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여자친구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임은 분명하다. 한국에 살고 있는데 외국에서 먹히는 얼굴이라니, 인생에 이득이 안 된다. 외국에 산다면 모를까.
세 개의 게임을 개발한 회사가 있다. 국내에선 모두 흥행 실패. 왜 게임이 다 망했느냐는 노골적인 질문에도 책임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건바운드’는 소송에 휘말려서, ‘라키온’은 당시 장르 한계성에, ‘울프팀’은 FPS시장 과열로 망했네요.”
이거 참, ‘쿨’하기도 하지. 하지만 소프트닉스의 장상채 이사가 이렇게도 ‘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이유는 세 게임이 모두 해외에선 이른바 ‘먹히는’ 게임이 됐기 때문이다. `건바운드` 누적 회원수 2,500만 명, `라키온` 1,000만 명, 그리고 막내 `울프팀`은 2,000만 명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들이 서비스되는 지역은 남미, 유럽, 아시아, 중동까지 50개국 이상이다. 자본금 10억으로 출발해 연간매출 150억(2011년 기준) 가까이 회사 수익 대부분을 오로지 나라 밖에서 벌어 들이는 소프트닉스.
이정도 되면 뿌듯할 정도의 성과다. 자, 국내에서 안 팔려서 좌절했던, 혹은 국내만으론 너무 좁다고 생각하는 중소개발사 여러분. 소프트닉스 글로벌사업본부의 장상채 이사가 전하는 `소프트닉스의 글로벌 생존 스토리` 한 번 들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 소프트닉스
글로벌사업본부 장상채 이사
동접 4만의 꿈을 안고 구입했던 서버 장비, 그러나…
개발사 규모를 막론하고 요즘 업계 종사자들에게 최대의 화두는 퍼블리셔다. 어떤 경우에는 게임명 외엔 아무런 정보도 없는 신작의 가치가 해외의 유명 퍼블리셔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문에 ‘기대작’으로 레벨업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해외 유수의 퍼블리셔 업체들이 리스트업되어 중소 개발사도 안전한 바이어 정보를 받을 수 있지만 2002년만 하더라도 ‘퍼블리셔’ 리스트는 무슨 그 개념 자체도 미약하던 때였다.
▲ `건바운드` 대표 이미지 (사진 제공:
소프트닉스)
당시 넥슨포털을 통해 ‘건바운드’를 서비스하던 소프트닉스는 처녀작 공개의 부푼 꿈을 안고-게다가 메이저 포털인 넥슨을 통해 서비스도 되고 하니- 동접 3만 이상을 예상하며 모든 장비를 구입했다. 2002년만 하더라도 퍼블리셔 계약은 채널링 형식일 뿐 서버 구입 및 운용까지 모두 개발사가 담당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국내 서비스가 기대만큼 안 되니 장비는 무용지물.
“큰돈 들여 구입한 장비를 놀리면 안 되니까 뭐라도 활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돌파구라도 찾아보려는 마음에 자체적으로 게임을 영어로 바꿔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우연찮게 찔러 본 상황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동접이 만 명까지 오르더군요.”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건바운드’를 알고 들어오는가 봤더니 꽤 많은 수가 저
멀리 남쪽 나라로 확인됐고, 그곳은 바로 페루였다. 좀 더 꾀를 내어 페루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를 추가하여 2004년 새로운 스페인어 버전을 공개했고 접속자 수는 6만까지
증폭됐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선 안 먹힌 얼굴이 페루에서 제대로 통한 것이다.
운영 미숙 개발사에서 서비스만큼은 확실한 퍼블리셔가 되기까지…
서비스 지역은 남미. 하지만 서버 장비나 개발자는 모두 국내에서 게임을 서비스하는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래도 개발사가 직접 서비스하다 보니 서비스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보안문제가 가장 속을 썩였다.
한번은 디도스에 대한 보안 지식이 취약하던 상황에서 페루발 디도스 공격이 일어나자 당시 소프트닉스 게임이 저장되던 두루넷 IDC(인터넷데이터센터)에서는 소프트닉스의 해외 접속 서버를 차단하기도 했다.
게임 접속이 불가능하다며 해외유저들의 항의는 빗발치고 국내에서는 아무리 확인해봐도 게임이 잘만 돌아가니 개발진들 입장에선 당황할 수 밖에. 이 문제는 결국 YAHOO! 검색어 순위 탑랭크에 오를 정도로 이슈가 됐다. 다행히 소프트닉스 사장님이 소싯적 KT 근속 경력을 살려 이틀 만에 해결을 볼 수 있었다.
▲ 당시에는
정말 회사가 망하는 줄 알았다던 장상채 이사
▲ 2011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소프트닉스파티` 모습 (사진제공: 소프트닉스)
▲ 2011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소프트닉스파티` 모습 (사진제공:
소프트닉스)
▲ 2011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소프트닉스파티`에서 현지 법인 직원 (사진제공: 소프트닉스)
이후 소프트닉스 직원들은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휴대폰을 꼭 상비한다. 전화가 울리는 시간은 자정부터 새벽 5시 사이. 시차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서버 점검 같은 경우는 근무시간에 해결되니 편하기도 하다고.
게임이 성공궤도에 오르자 소프트닉스는 페루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CS는 물론 마케팅이나 유통까지 본격적인 사이즈 확장에 돌입한 것이다. 그렇게 축적한 동접수는 이제 육만 명에 달한다. 페루는 물론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멕시코, 칠레, 터키, 인도네시아, 아랍권 지역까지 진출했다. 몇몇 나라에선 게임 순위 1위에 굳건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해외에서, 그것도 메이저 시장이 아닌 미개척지에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상채 이사는 겸손하게도 ‘생존’이란 단어를 강조하며 당시 소프트닉스가 처한 남다른 절박함을 이야기했다.
“중소개발사로서 생존의 연속 선상에서 움직이기 때문이겠죠. 일반적으로 남미에 진출한다면 브라질이나 멕시코, 칠레에서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어느 정도 시장 가능성이 증명된 시장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출발지가 달랐습니다. 유저 유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성공률이 높았던 거죠.”
퍼블리셔vs직접 서비스? 소형 개발사일수록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최근 글로벌 게임시장에 거대 퍼블리셔 텐센트가 출현하면서 개발사들의 퍼블리셔 의존도가 높아졌다. 특히 작은 개발사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중소개발사로서 세계 각지의 다양한 경험이 있는 장상채 이사의 주관은 어떨지 궁금했다.
소프트닉스 역시 직접 서비스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자사의 게임은 자사 플랫폼에 올린다’라는 원칙이 있긴 하지만 작은 회사라면 언제든지 생존을 위해서 방향을 틀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계약조건이 좋아도 하지만 계약금을 위해 코드가 맞지 않는 퍼블리셔와의 계약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만일의 경우 게임 기획까지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택은 어렵다. 하지만 장상채 이사는 말한다. 선택의 길도 자주 접하면 실력이 는다!
▲ 소프트닉스
포르투갈어 지역 홈페이지
▲ 소프트닉스
스페인어 지역 홈페이지
중소개발사일수록 유동적일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거대 퍼블리셔와 계약하는 것만이 왕도는 아니다. 소프트닉스 역시 현지 퍼블리셔와 계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퍼블리셔와의 계약관계에서 볼 때 소프트닉스가 타 기업들과 다른 사업 노선을 추구한다. 아무래도 주요 활동무대가 미개척 시장이다 보니 퍼블리셔의 득을 본다기보다 그들의 역량을 함께 키워나가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터키 시장이 그렇다.
지금은 터키가 소프트닉스의 주요 무대로 성장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부에선 시장 철수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서비스 2년이 지나도 유저 수가 7천 이상 넘질 못했기 때문.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고 파트너사였던 조이게임에 최대한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조이게임이 좀 더 사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마케팅 권한을 주고, 서버 관리 권한 등을 넘겼다. 그를 위해 소프트닉스의 개발자들이 터키와 한국을 오가며 운영 이슈나 서비스 관련 기술도 교환했다. 그러자 터키 시장 첫 해에 올린 70만 달러(한화 8억 원)의 매출은 재작년 280만 달러(약 33억원)로, 작년엔 900만 달러(약 102억 원)로 치솟았다. 또한, 조이게임 역시 터키 최상의 게임포털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 `울프팀`의
터키 및 중동지역 퍼블리셔 조이게임 포털
“한때 소프트닉스가 가진 역량이 무얼까 생각을 해봤던 때가 있었어요. 결론은 우리가 새로운 시도의 단계에서 `재지 않고` 도전한다는 사실이더군요. 자금, 사람, 인프라 같은 것들 말이죠. 이게 바로 소프트닉스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하나라도 생존의 기회가 발견된다면 그곳에 투자했으니까요. 개발사가 가진 생명력을 길게 유지하기 위해선 크게 한 방을 노리기보다 이런 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소형 개발사가 직접 게임을 서비스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장상채 이사는 중소 개발사들이 정부에서 제공하는 수출지원정책을 적극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과거 게임전문 배급업체인 K2네트워크에서 제공하던 영어 서비스로 ‘나이트 온라인’이나 ‘실크로드 온라인’이 자리를 잡았듯이, 요즘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글로벌서비스플랫폼(GSP) 사업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GSP 사업은 국산 게임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온네트, 조이맥스 등을 해외 히트 개발사로 키우는데 일조했다. 소프트닉스도 마찬가지고.
“우선은 큰 부담 없이 KOCCA GSP사업에 게임을 올려놓아 보세요. 그럼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 나타나겠죠. 소프트닉스가 발견한 페루처럼 말이죠. 피드백이 있는 지역이라면 거기가 블루오션입니다. 요즘 여기가 블루오션이라더라, 저기는 레드오션이라 하며 시장을 따져 게임을 서비스하기보다, 우리 게임이 맞는 시장을 찾는 게 훨씬 중요할거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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