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는 포기했지만, 팬들이 되살린 '히오스' 리그
2019.04.12 18:22게임메카 김미희 기자
작년 12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 팬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블리자드가 ‘히어로즈’ 공식 리그를 중단한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기존에 활동하고 있던 팀과 선수들이 이 사실을 미리 전해듣지 못한 상태에서 대회가 막을 내리며 아쉬움은 더 커졌다. 선수와 팬 모두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접을 때 접더라도 ‘마지막 무대’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올해 3월 사라진 줄 알았던 ‘히어로즈’ 리그가 부활했다. 아프리카TV가 3월 14일부터 ‘히어로즈’ 리그: 리바이벌을 시작한 것이다. 종목사인 블리자드가 공식 리그를 중단한 가운데 아프리카TV에서 ‘히어로즈’ 리그를 되살려낸 것이다. 그 열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본래 계획은 ‘마지막 무대를 해보자’라는 일회성 리그였지만 현재 ‘히어로즈’ 리바이벌은 차기 시즌 진행이 확정된 상황이다.
이러한 열기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팬들이 손수 모은 후원 금액이다. ‘히어로즈’ 리바이벌은 팬들이 방송에 후원한 별풍선 95%를 대회 상금으로 사용한다. 팬들이 직접 상금을 모아주는 셈이다. 그리고 결승을 2주 앞둔 현재 후원 금액은 1,650만 원을 돌파했다. 리그 제작을 맡고 있는 아프리카TV e스포츠콘텐츠팀 최성화 사원은 “한 번에 별풍선 10,000개(약 100만 원)을 후원한 팬도 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차기 시즌 개최가 확정된 것 역시 팬들의 힘이다. 리그가 꾸준히 인기를 얻자 아프리카TV는 공약을 걸었다. 후원 금액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마다 ‘이것을 하겠다’라고 약속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1,500만 원을 돌파하면 차기 시즌을 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후원금은 1,5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최성화 사원은 “이처럼 후원금이 모이자 선수들도 대회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특히 이번에 출전한 트로그 팀 소속 선수 ‘이삭’의 경우 본래는 프로리그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대회가 없어지며 본인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대회가 생기며 팬들에게 그간 노력해온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경기에서 이기고 난 후 PC방에서 울면서 게임을 하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후원 최종 목표는 2,000만 원이다. 후원 금액이 2,000만 원을 돌파하면 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 5명을 선발해 ‘아프리카 프릭스(아프리카TV e스포츠단)’ 이름으로 네이밍 스폰을 하기로 한 것이다. 최성원 사원은 “이 역시 목표를 달성한다면 실행할 것이며, 선수 선발에 대한 세부 기준은 이후에 확정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히어로즈’ 리그는 팬들이 되살린 대회라 봐도 무방하다. 공식 리그는 종료되었지만 ‘히어로즈’ 리그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최성화 사원은 “첫 방송 때 시청자는 3,000명 정도였으며 지금도 평균적으로 2,000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 누적 시청자는 10만에 달한다”라고 전했다. 이는 대회 시작 전 제작진이 예상했던 수치를 훌쩍 뛰어넘는 성과다.
‘히어로즈’ 대회를 해보자고 결정한 원동력도 여기에 있다. 최성화 사원은 “히어로즈 리바이벌은 그동안 ‘히어로즈’ 리그 중계를 맡아온 신정민 해설이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아쉬움에 직접 대회 기획서를 만들어 회사에 제출하며 시작됐다. 이러한 해설진의 의지와 대회를 원하는 팬들의 마음, 그리고 저희 제작진의 니즈가 부합하며 대회를 열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아프리카TV 입장에서도 ‘히어로즈’ 리그는 새로운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매리트가 있었다. 최성화 사원은 “대회를 준비하며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아프리카TV에는 ‘히어로즈’ BJ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TV보다는 다른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개인방송 진행자가 많다”라며 “다른 플랫폼에 있는 시청자들이 대회를 보러 아프리카TV에 찾아올까, 라는 의문도 있었는데 걱정과 달리 의미 있는 수치를 기록했다. 아울러 리그에 출전한 선수들이 아프리카TV에서 개인방송을 진행하는 등 ‘히어로즈’ BJ도 전보다 늘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첫 시즌을 진행하며 예상치 못한 잡음도 있었다. 가장 큰 부분은 대회에 출전 중인 선수가 가족여행을 간다는 이유로 도중에 리그에 불참하겠다고 한 것이다. 선수 공백이 생긴 이 팀은 결국 기권했다. 열심히 응원해온 팬들 입장에서는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프리카TV 콘텐츠제작팀 박찬주 제작PD는 “다음 시즌에는 좀 더 구체적인 규칙을 마련하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팬들이 만든 리그인 만큼 앞으로도 팬들이 원하는 대회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최성화 사원은 “내부에서도 ‘히어로즈’ 리그를 정말 좋게 보고 있다. 팬들의 후원을 바탕으로 한 리그는 아프리카TV 내에서 이번이 첫 성공사례다”라며 “아울러 리그에 많이 힘을 써준 중계진과 선수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열릴 4강과 결승전, 그리고 차기 리그까지 많은 시청을 부탁 드린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