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게임광고] 순수하고 소박했던 20년 전 ‘덕질’
2019.09.09 17:26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직구’라는 단어의 뜻을 굳이 설명하기 민망해질 정도로, 이미 쇼핑의 국경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특히 한 분야의 마니아, 일명 ‘덕후’들은 이러한 쇼핑과 수집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해외에서 발매되는 제품에 예약 구매를 건 후 발매일에 맞춰 직배송받고, 국제배송이 안 되는 물품도 중간 대행지 시스템을 이용하곤 합니다. 심지어 온라인 구매가 어려운 한정판 상품의 경우에는 현지로 직접 날아가 줄을 서기도 하죠. 사실상 한국,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을 공유하는 것과 다름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분야에선 더욱 그랬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려면 청계천을 기웃거려야 했고, 한국에 수입되는 몇 안 되는 ‘덕질’ 용품에 만족하지 못 한 이들은 조악한 품질로나마 팬메이드 제품을 만들어 공유하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온라인 정보 공유와 쇼핑, 배송 시스템이 아직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시절 덕질 용품들은 어느 정도였는지, 광고를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제우미디어 PC챔프 1998년 5월호 잡지에 실린 ‘애니메 클럽’ 광고입니다. 해당 업체는 국내외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하며 가맹 사업을 벌였는데,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만으로는 국내 수요가 부족했기에 게임 캐릭터 비중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게임잡지에 광고를 실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구요.
당시 제품들을 보면 ‘사쿠라대전 2’ 벽시계와 ‘도키메키 메모리얼’ 머그컵이 전면에 있습니다. 바로 밑에는 ‘센티멘탈 그래프티(그래피티가 아니고?)’와 ‘에반게리온’ 피규어가 있는데요, 센티멘탈 그래피티는 멀어서 잘 안 보이지만 에반게리온은 좀… 사신상 수준이네요. 그 외에 캔 박스와 트레이딩 카드가 보이고, 오른쪽에 보면 각종 컵, 저금통, 직소퍼즐, 티셔츠, 키홀더(휘규어!), 포스터, 행커치프 등이 보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가벼운 덕질 제품들입니다.
지금 마니아들이 보면 ‘저게 무슨 덕질이야’ 싶을 정도의 상품도 많지만, 당시 물 건너온 공식 굿즈에 메말라 있던 국내 마니아들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구성이었습니다. 이런 물건들을 동네 게임샵에서 살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요. 그렇게 꽤 많은 호응을 받은 ‘애니메 클럽’은 매달 신규 제품 라인업을 들여놓으며 꾸준히 잡지에 광고를 싣습니다. 3달 후인 1998년 8월호에는 멜로디가 나오는 짱구 인형과 포켓몬 ‘나옹’ 인형, 에반게리온 ‘레이’ 직소퍼즐 벽시계 등이 새롭게 선보여졌습니다. 전문 가맹점과 특약점도 대학로와 부천, 수원에 하나씩 늘어났고, 전화통신판매도 시작했습니다.
최초 광고로부터 1년 후인 1999년 5월로 가면 꽤나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광고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상품이 많아졌네요. ‘카드 캡프터(!) 사쿠라’와 ‘화이널 환타지(!) 8’ 피규어를 비롯해 마크로스, 건담, 포켓몬스터, 봄버맨 등 캐릭터 상품이 다양해졌고, PS1 본체를 비롯해 각종 패드, 리듬게임 컨트롤러까지 들어왔습니다. 특약점 수만 12개로 늘어났고, 전문점과 PC통신, 코너특약점 등도 빼곡합니다. 1년 새 늘어난 국내 덕질 수요를 짐작케 합니다.
1999년 12월로 가면 당시 국내에서 대유행하던 ‘포켓몬스터’ 상품이 부쩍 늘었습니다. SBS에서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것이 7월이고, 그 해 말 띠부띠부씰 빵이 출시되며 남녀노소 누구나 포켓몬을 좋아할 때였죠. ‘포케트 몬스터’, ‘포켓몬스타’ 등 널뛰던 표기도 ‘포켓몬스터’로 정리됐고, 카드게임과 봉제인형 등이 눈에 띕니다. 그 외에 비트매니아 미니게임기도 눈에 띄네요.
다만, 포켓몬스터나 마리오, 리듬게임 등 대중적 인기 콘텐츠에 집중해서인지, 예전에 주력으로 삼던 마니아 타깃 상품 비중은 꽤 줄어들었습니다. 광고에서도 피규어나 트레이딩 카드, 포스터 등 마니아 취향 제품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PC통신과 전화통신판매도 사라졌네요. 가맹점에도 약간의 교통정리가 이루어졌는지, 5월에 비해 수가 꽤 줄었습니다. 종합 특약점과 캐릭터 특약점으로 세분화시켜 놓은 것이 눈에 띄는데, 게임기/주변기기 도매와 캐릭터 상품을 같이 팔다 보니 기존 매입처가 있는 게임샵들에는 캐릭터 특약점 형태로 계약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애니메 클럽’ 마지막 광고는 2000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캡콤 피규어 피규어 콜렉션을 빼면 봉제인형과 열쇠고리 등이 전부입니다. 아무래도 당시 시장이 크지 않던 마니아 상품 비중을 대폭 줄이고, 상대적으로 마진이 높은 게임기와 게임 물품에 초점을 맞추며 게임 도매업 쪽에 집중하지 않았나 싶네요. 이후 ‘애니메 클럽’ 광고는 잡지에 더 이상 게재되지 않았고, 아마도 사업 규모를 줄이다 사라졌거나 상표를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이 광고를 보고 있자니, 외국 문화와 상품을 직접 접하기 힘들던 90년대, 해외를 오가는 개별 업자들에 의해 선별된 문물만 부분적으로 접하던 당시 마니아 문화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초고속 통신망 보급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이러한 마니아 문화에 대한 정보망이 활짝 열리고 더욱 본격적인 덕질 용품을 찾는 행렬이 시작되면서, 이런 소규모 하비샵들은 차츰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지금 보기엔 다소 소박하지만, 당시엔 하나하나가 소중했던 과거 ‘덕질’ 제품들.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