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스페이스 3, 공포를 버리고 액션만 고집했다
2013.02.13 18:20게임메카 임진모 기자
▲ 지난 5일 멀티 플랫폼으로 발매된 '데드 스페이스 3', 여전히 고생만하는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
EA의 대표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한 공포 TPS ‘데드 스페이스 3’이 지난 5일 PC, PS3, Xbox360으로 정식 발매됐다. 신작의 주인공은 여전히 ‘공돌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고 있는 아이작 클라크며, 그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와 네크로모프(적)의 습격도 유효하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이번 신작은 지구의 운명을 건 스토리로 규모가 한층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걸맞게 폐우주선을 배회하던 전작과 달리, 혹한에 얼어붙은 타우 볼란티스 행성으로 무대를 옮겨 사투를 이어간다. 여기에 시리즈 최초로 플레이어가 직접 공구를 제작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과 협동 플레이 모드를 추가해 전작보다 액션이 강화됐다. 이처럼 상당히 많은 변화를 예고했지만, 모든 추가 요소가 시리즈 팬들에게 호평받을 수 있을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봤다.
쏘고 피하는 재미는 시리즈 최고, 부품을 모아 제작하는 재미도 쏠쏠
이번 신작의 핵심 시스템은 협동 플레이 모드와 무기 및 장비 커스터마이징이다. 먼저 협동 플레이 추가만으로, 싱글 캠페인 완료 이후 도전과제 외 즐길 거리가 없었던 전작에서 탈피하게 됐다. 특히 멀티 플레이 전용 미션이 다수 추가돼 단순히 2명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타 게임의 ‘뻔함’과는 차별화됐다. 여기에 싱글 캠페인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스토리를 멀티 플레이 미션에 담아 이를 플레이하고 싶게끔 유저를 유도한다.
액션 강화에 크게 일조한 것은 단연 커스터마이징이다. 먼저 공구(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몸통, 총구, 손잡이 등 총 7가지로 세세하게 분류해 놓았다. 이에 외형은 물론 성능까지 각기 플레이어의 개성(취향)이 묻어나도록 다채롭게 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구 상단에 유탄 발사기와 하단부에 플라즈마를 부착하면, 전투 시 적의 다리를 훼손시켜 이동을 막고 화력이 강한 유탄을 쏘아 마무리하는 방식의 플레이가 가능하다. 또 풍부한 탄약이 장점인 머신건을 위와 아래, 이중으로 장착해 쉴틈 없이 적에게 난사를 가할 수도 있다. 여기에 같은 무기라도 스킬 효과를 겸한 부품 장착에 따라 성능이 확연히 달라지는 등, 나만의 오리지널 공구를 만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 회복약 보다 귀중한 공구 제작에 필요한 부품들
▲ 손잡이, 몸통, 총구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분류해놓았으며, 스킬로 개성까지 살릴 수 있다
물론 공구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부품은 이동 중 아이템을 습득하거나 네크로모프를 쓰러뜨리고 전리품으로 획득할 수 있다. 특히 희귀한 부품을 얻기 위해서는 소형 로봇인 ‘스캐빈저 봇’을 알맞은 장소에서 사용해야 하는 등, 특정 조건이 붙은 종류도 있다. 속칭 노가다에 가까운 노동력과 시간을 필요하다고 할 수 있으나, 오랜 시간 즐길 거리가 생겼다는 점은 반길 일이다.
반면, 전투에서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추가한 ‘엄폐’와 ‘구르기’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게임에서는 전작 이상의 넓은 장소에서 더 많은 적과의 사투가 빈번하다. 이에 ‘엄폐’를 활용해 주변 지형지물에 몸을 기댄 상태로 공격과 재장전 타이밍을 엿보는 전략이 예상되지만, 솔직히 사용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다. 공구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충분히 화력만으로 적 다수를 제압하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맞불 작전으로 화끈하게 싸워왔던 ‘데드 스페이스’에 이 같은 소극적인 생존 전략이 필요한가 싶다.
여기에 생존 확률을 높여준 ‘구르기’는 액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어를 배려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효율이 지나치게 좋아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 ‘구르기’는 타이밍만 파악하면 적의 모든 공격을 손쉽게 회피할 수 있으며, 연속으로 사용해도 제한이 없다. 무엇보다 재장전 중에 ‘구르기’를 사용하게 되면, 장전하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탄창이 채워진다. 이는 게임이 그저 쉬워지는 데 크게 일조한 것이다.
공포를 버린 공포 게임, 원인은 뻔한 전개와 구성
공구 제작과 이를 사용해 적을 소탕하는 액션의 짜릿함만 신경 쓴 탓일까?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인 공포는 이번 신작에서 느끼기 어렵다. 설명에 앞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자가 겪은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게임을 플레이 중에 동료 기자가 다가와 “무서운 게임인데, 너무 태연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기자는 그다지 강심장도 아니고 눈물도 많은 감성적인 편에 속한다. 그런 기자가 태연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을 정도로, ‘데드 스페이스 3’은 공포와는 거리가 멀다.
공포를 앗아간 가장 큰 문제는 게임 내 모든 상황이 예측 가능할 만큼 뻔하다는 것이다. 게임의 배경은 대부분 어둡고 장소에 따라 협소한 곳이 많다. 여기에 배경 곳곳은 피가 흥건해 음산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까지는 공포를 유발할 만한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 여전히 어둡고 불길한 배경과 분위기, 하지만 문제는 진행 방식에 있다
하지만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된 진행 방식이 공포를 반감시킨다. 게임은 특정 장소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디서 무엇을 구해오거나 작동시켜야 한다는 임무가 많다. 그리고 그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다시 처음 장소로 돌아와 새로운 장소로 나아가는 일이 다반사다. 이동 중에는 당연하게 적이 출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무언가를 작동시키거나 필요한 아이템을 얻으면 다시 한 번 쏟아져 나온다. 무엇보다 숨어 있다 덮쳐오는 것이 아닌 그저 맹렬하게 달려오는 정도의 공포는, 전작을 해본 플레이어에겐 이미 내성이 생기고도 남아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 네크로모프의 흉칙한 몰골만으로 공포를 주기엔, 팬들은 이미 내성이 생긴지 오래다
▲ 덮쳐오면 버튼 연타로 빠져나가면 그만, 더욱이 공구만 잘 강화하면 이같은 접근은 다신 허용치 않는다
적의 흉물스런 생김 또한 더는 공포로 다가오지 않는다. 전작까지 숱하게 봐왔고 공격 패턴도 같은 적에게 공포가 느껴질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이 같은 뻔한 등장과 반복되는 진행 방식은 전작에서도 똑같이 혹평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이 뻔한 전개를 고치기는커녕, 이번 신작에까지 그대로 가져왔고 그 비중만 게임 전체 진행률에 무려 1/3에 해당한다.
그나마 타우 볼란티스 행성에 불시착한 이후의 전개는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눈보라가 몰아쳐 시야 확보가 어려워 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개중에는 눈 속에 숨어 있다 갑자기 튀어나와 깜짝 놀란 것이 여러 번이다. 여기에 새로운 네크로모프의 등장까지, 그저 같은 장소만 여러 번 돌아다녔던 지루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내 뻔한 흐름으로 빠진다. 다시 어둡고 협소한 내부로 들어서고, 당연하게 앞이 막히면서 어디서 무엇을 구해오거나 작동시킨 이후 다시 처음의 장소로 돌아오는 기계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는 네크로모프와의 반복적인 전투만 이어질 뿐이다.
▲ 타우 볼란티스 행성에서는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다, 탁 트인 배경과 새로운 적들의 등장
▲ 하지만 여전히 같은 맵을 반복해서 돌고도는 지루한 진행 방식만 이어진다
개중에는 통풍구를 통해 위나 아래에서 불시에 네크로모프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공포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데 바로 ‘소리’다. ‘데드 스페이스 3’은 전작 이상으로 소리에 공을 들인 것이 특징이다. 적 등장과 함께 전투에 돌입할 때, 그리고 상황이 종료될 때, 전투에서는 네크로모프 종류에 따라 각기 고유의 괴성을 내 무엇이 나타났고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소리’로 미리 대비할 수 있다. 더욱 청각적인 공포를 선사하기 위해 공들인 노력이 오히려 적 등장을 미리 알려주는 수신호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일격에라도 적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공구를 강화하게 되면 공포를 느낄 새도 없다. 단순히 내 무기의 효율을 시험해볼 수 있는 학살의 시작이다. 이렇다 보니 공포를 기반으로 한 게임에서 공포를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울 따름이다.
복선과 미스터리는 어디로, 지구를 구하는 영웅담으로 변질한 스토리
‘데드 스페이스’는 애니메이션 영화 및 책으로도 출간되었을 만큼, 원 소스 멀티 유즈가 활발한 IP다. 그 중심에는 블랙 마커의 발견과 레드 마커의 탄생에 대한 독특한 세계관과 SF 스토리 전개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에 개인차가 있겠지만, 스토리에 대한 평가도 피할 수 없다.
설명에 앞서, 이번 신작 역시 전작의 스토리를 공유해 전작을 모르는 플레이어에게는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쉬움을 더한 것은 게임 내 세계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콘텐츠가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부족하다. 더욱이 자막 한글화되지 않았다는 악재까지 겹쳐 대사 및 공략집이 없다면 언어장벽에 자유로울 수 없고,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 역시 어렵다.
스토리에 대한 평가는 전작만큼의 충격도, 흥미를 돋울 만한 장면도 없어 솔직히 ‘별로’다. 전작에서는 니콜의 환영에 시달리며 고뇌하는 아이작의 모습 및 그 속에 숨은 복선과 스토리가 흥미를 더했고,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던 이벤트 장면이 다수 펼쳐져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가에 대한 미스터리까지 안겨준 바 있다. 이처럼 엔딩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찜찜함이 끊임없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신작에서는 스토리상에 복선과 미스터리 요소가 덜하다. 단순하게 타우 볼란티스 행성에 200년간 잠들어 있던 ‘무엇’을 처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 전작과의 연계성 없이 갑자기 끼어든 프롤로그와
▲ 아이작 클라크의 영웅담으로 마무리되는 천편일률적인 스토리까지, 솔직히 '별로'다
물론 이번 작품으로 ‘데드 스페이스’가 완결이 나는 것은 아니기에, 약간 미심쩍은 부분은 남아있다. 하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그리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천편일률적인 전개만 그렸다는 점에서 전작을 즐겨온 팬들에게조차 스토리가 단조롭고 재미가 없다는 혹평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작을 그대로 답습했던 뻔뻔함은 버려야 하지 않나
‘데드 스페이스 3’은 커스터마이징의 재미와 함께 다양한 무기를 활용하는 액션이 한층 강화되었고, 플레이 타임 역시 곱절로 늘어났다. 이는 일회성이 강한 액션 어드벤처 장르치고는 고무적인 일이다. 여기에 이벤트 장면에서 주인공과 그의 일행이 갖은 역경을 겪지만, 결국엔 이겨내는 모습을 한 편의 영화처럼 잘 표현해냈다.
▲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벤트 연출의 흡인력 만큼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반면, 공포를 전면에 내세워 시작한 초심은 많이 잃어버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공포라는 요소가 플레이어 내면에 점점 내성으로 자리 잡아 액션만 돋보이기 마련이다. 즉 공포를 잃었다는 건 ‘데드 스페이스’만의 고충이 아니라 ‘공포 TPS’라는 장르 자체가 극복해야 할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전작에도 지적된 반복 진행을 조금의 개선조차 하지 않고 답습하는 뻔뻔함은 버리거나 고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 호러 TPS에서 그냥 TPS로 탈바꿈한 '데드 스페이스 3', 차기작에선 이를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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