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녀메카] ‘투하트’도 안 해보고, 미소녀 게임을 논하다니?
2013.07.17 18:34게임메카 Pade
서장
안녕하세요. 미소녀 게임 전문 개발사로 알려진 듯한(?) M사의 대장 Pade입니다. 때는 대략 3주 전, 게임메카 미소녀 기자가 보낸 전보에서 악몽은 시작됐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급한 일인데 혹시 연락 가능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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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왜 부르나 긴장했습니다. 전에 스마트폰 게임메카와 했던 패기 인터뷰(바로가기)가 잘못돼 법적인 문제라도 발생했나 싶었죠. 아니, 보통은 미소녀메카 대부활 프로젝트 같은 걸 급한 일이라고 합니까? 아니잖아요!
이런 미치광이(?) 같은 특집이 게임메카의 흑역사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런 기획이 현세에 다시 부활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고맙습니다, 게임메카. 앞으로 진력을 다해 원고를 바치겠나이다.
흠흠. 아무튼, 앞으로 이 코너는 미소녀 전문가 2인의 주고받기로 채워질 예정입니다. 앞으로 미소녀 게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등 오타쿠를 위한 전통기술에서 최첨단 테크놀로지(!)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계획입니다. 먼저 첫 타자로 앱숀가면 기자님이 ‘Air’를 다루었기 때문에, 이번 편에서는 ‘투하트’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동급생의 바통을 이어받다
원래 미소녀메카 부활 2탄으로 소개하려 했던 타이틀은 ‘투하트’가 아니라 ‘투하트 2’였습니다. 애증하는 작품인데다 실제로 가장 많은 패키지 바리에이션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투하트 2’를 소개하려고 하니 결국 전작인 ‘투하트’를 빼놓을 수 없겠더군요.
▲ 정말 오래된 타이틀이라 그런지 대표 타이틀도 찾기 힘드네요
‘투하트’는 미소녀 게임으로 드물게 대작게임 반열에 오른 타이틀입니다.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잠시 옛날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90년대 후반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PC가 많이 보급됐고, 인터넷 회선도 빨라졌습니다. 인터넷 공간은 순식간에 방대해졌죠.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용산이나 청계천을 배회하며 불법 복제물을 구해야만 했던 소위 ‘덕질’을 보다 대중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무슨 얼토당토없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한국만큼 다이나믹하게 에로게를 다운받아서 하던 나라는 그 당시 없었으니까요!!!!!!!!
미소녀 게임을 위시한 일본 서브 컬처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게 된 다른 또 다른 계기는 ‘번역’입니다. 불법이긴 했지만, 소수만 향유할 수 있었던 일본 게임을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게 만든 점은 분명히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한국에서 미소녀 게임 좀 해봤다는 사람 중에는 ‘동급생’ 시리즈로 이 바닥에 입문한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발매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미려한 그림체를 가지고 있었고, 색 표현, 게임성, 스토리까지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는 명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동급생’ 역시 한글 패치가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많은 이가 기억하는 작품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미소녀 게임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은 역시 ‘동급생’이라기 보다 ‘동급생의 한글패치’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네요.
그 뒤를 이은 한글 패치 대작이 바로 ‘투하트’입니다. 작품 발매 이후 상당히 빠르게 한글화가 된 편이라 최신작을 국내에서도 발 빠르게 즐길 수 있었고, 여기에 더해 일본에서 방영됐던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정식 수입되기도 했습니다. ‘투하트’는 비주얼 노벨 장르에 속하기 때문에 이처럼 빠른 한글화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한글패치 없는 비주얼 노벨은 일본어 모르는 사람은 하지 말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으니까요.
비주얼 노벨의 시초를 열다
‘투하트’는 일본에서도 미소녀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습니다. ‘투하트’ 이전의 흥행작들은 대체로 어드벤처나 육성 위주의 게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비주얼 노벨이라 할 만한 장르가 크게 두각을 나타낸 적은 없었던 거죠. 비주얼 노벨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것도 리프(Leaf)로, 이들을 통틀어 ‘리프 비주얼 노벨 3연작’이라고 칭합니다.
리프 비주얼 노벨 3연작의 마지막 작품인 ‘투하트’는 기존 타이틀과는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색감이 확 밝아졌고, 캐릭터는 미형이 되었으며, 밝은 표정과 미소를 띠고 있었죠. 어디까지나 뒷맛이 쓰지 않은 진짜 상큼한 미소 말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캐릭터가 좋은 짜임새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흔히 스토리 텔링은 캐릭터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커다란 극적 구성은 인물과 사건, 배경이 버무려져 만들어집니다. 아무래도 스토리는 사건이나 배경보다는 인물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고, 사건과 배경은 캐릭터에 맞춰지는 경향이 큽니다. 이게 바로 ‘투하트’가 다른 리프의 게임인 ‘시즈쿠’나 ‘키즈아토’와는 다른 점입니다.
▲ 어디가 아픈거니 나에게 말해보렴
‘투하트’에서는 작품이 캐릭터에 짜맞춰 져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즉, 전작들이 서사 중심이라면, ‘투하트’는 인물 중심적인 구성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인물 중심 구성은 캐릭터의 성격과 외형에서 크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키즈아토’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하나의 세계관에 묶여 치밀한 틀 안에서 움직이며 사건을 자아내고 있다면, ‘투하트’에서는 공략하는 캐릭터 사이의 관계가 느슨하고, 루트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분기됩니다. 이건 정말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극도로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구성입니다. 단적인 예로 공략 가능한 히로인의 수가 많이 늘어난 것을 들 수 있겠죠.
‘투하트’는 진 엔딩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오히려 캐릭터 개개인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모두 제각기 전개하면서 다양한 캐릭터와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도록 안배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캐릭터 개개인을 다루면서,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여러 캐릭터를 집어넣어 마치 ‘미소녀 동물원’을 만드는 게 가능해진 것입니다. 박수! 여동생 같은 소꿉친구 캐릭터라든지, 후세에도 길이 남아 있는 메이드 로봇 캐릭터 같은 것들 말이죠. 이쯤에서 잠시 ‘투하트’의 매력적인 등장인물을 살펴볼까요?
인물 소개 (CG는 PSE 버전 기준)
▲ 현모양처 히로인의 전형과도 같은 존재
카미기시 아카리: 이전에 정립되어 있었던 여동생 캐릭터에 소꿉친구 캐릭터를 더해, 완벽한 히로인의 표상이 탄생했습니다. 주인공을 좋아하고, 아끼며, 사모하는 해바라기인 카미기시 아카리는 요리 실력도 좋고 가사도 만능, 성격조차 상냥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야말로 현모양처의 표상인 거죠. 하지만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지낸 아카리를 이성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마음을 받아들인 뒤에도 몸이 받아들이지 못해 한 번 부침을 겪게 되죠. 이게 게임 역사상 길이길이 남는 ‘발기부전’ 스토리입니다
▲ 코스프레가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쿠르스가와 세리카: 주인공의 1년 선배로, 굴지의 기업으로 등장하는 쿠르스가와 중공의 영애. 무려 흑마법에 심취하고 있는 아가씨입니다. 쿨한 성격인 것 같지만 실은 사람 대하는 것이 서투른 것뿐, 막판에는 거의 주인공을 보쌈하듯이 선을 넘어 버려, 뭇 플레이어들에게 충격을 안기죠.
▲ 천방지축이지만 재능이 넘치는 히로인
나가오카 시호: 이후로 리프에서 제작하는 게임마다 등장하는 시끌벅적한 정보통 캐릭터.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본성은 착하지만 여기저기 민폐를 끼쳐 빈축을 사곤 합니다. 이런 캐릭터는 대체로 인기가 없죠. 하지만 조금은 쌉쌀한 전개와 엔딩 후의 이야기를 보고 나면 뭔가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생기기도 합니다.
▲ 저런 구형 노트북으로 잘도!!
HMX-12 마루치(멀티): 한때, 대한민국의 오타쿠는 마루치를 아는지 모르는가로 나뉜다던 시절도 있었다고 전해지는 캐릭터. 범람하는 메이드 로봇의 선조입니다. 여담이지만 멀티냐 마루치냐를 두고 어떻게 부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다툼도 잦았죠. 팬 투표에서 거의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인기 최강을 달리며, 당대의 미소녀 게임 캐릭터 중 인기도 단연 탑이었습니다. 시작형 모델로 만들어져, 세리오와는 경합을 벌이는 스토리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도 둘 다 양산되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양산된 마루치에게는 인간의 감정이 없었죠. 선을 넘을 때의 설정이 심히 무리수라 더치와이프가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었던 캐릭터지만, 미소녀 게임치고는 상당히 심도 있게 인간이나 인격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지 않나 싶습니다. 그냥 단순히 로리한 캐릭터여서 인기가 있는 것만은 아닐 거예요. 아마도.
▲ 안경을 벗은 반장. 그런데 누구냐. 넌!?
호시나 토모코: 안경 반장 캐릭터. 부모가 이혼을 해서 가정사 전반에 뭔가 그늘이 낀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PC판에서는 끝까지 안경 반장이지만, PS판에서는 데이트 이벤트에서 머리를 풀고 콘텍트렌즈를 낀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그때의 격차가 상당해, ‘안경을 벗으면 실은 미소녀’ 공식을 가속시키기도 했습니다.
▲ 유일하게 바스트가 90 이상
미야우치 레미: 역시 ‘투하트’ 이후로는 심심찮게 등장하는 혼혈 캐릭터. 사실은 주인공과 어릴 적 친구 사이이자, 주인공의 첫사랑이었다는 케케묵은 수법이 섞여 있지요. 그리고 역시나 주인공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는데, 이유인즉슨 어릴 적 왕따가 걱정되어 머리를 까맣게 염색했던 탓이라고. ‘묘한 억양의 일본어를 쓰며 일본 문화에 탐닉하는 미국인’ 캐릭터로, 요즘 시각으로 보면 상투적일 수도 있지만, 스토리를 그려내는 맛이 꽤 좋았습니다. 가슴 하나는 일단 게임 내 탑.
▲ 나오는 이벤트 CG라는 게 거의 다 이런 식
마츠바라 아오이: 공수도 소녀. 90년대 후반에 무려 이종격투기를 하는 여고생 캐릭터를 이런 게임에 등장시켜 버렸습니다. 강함을 동경하지만, 그만큼 주변 친구들과는 다른 모습이 되는 자신에 은근히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죠. 이런 부분을 아우르며 소녀심을 공략하다 보면 어느새 엔딩에 도착합니다. 아오이 루트에서 아오이의 목표이자 멘토로 아야카가 등장합니다. PC판에서 아야카를 구경하려면 아오이를 공략할 것.
▲ 머리가! 머리가아!
히메카와 코토네: 초능력 소녀. 자기 능력이 통제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말려드는 것 때문에 어두운 성격이 되었습니다. 단성 생식에 의해 태어났다는 설정까지 들어가 있는 캐릭터로, 덕분에 가정환경조차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시 주인공이 의지가 되어주면서 변하기 시작하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기 몸까지 던져가며 믿어준 끝에 능력 제어에 성공하게 됩니다. 맺어질 때, 거의 준비하고 유혹한 듯한 경우가 되어 버려 각종 2차 창작에서는 독한(?) 아이로 그려진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히나야마 리오: PC판 기준으로는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는 캐릭터. 맺어질 때조차 거의 상납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래저래 평판이 참 좋지 않은 캐릭터였죠.
HMX-13 세리오: 마루치가 인간적이고 따뜻하면서 기능은 부족하다면, 세리오는 인공위성과 링크되어 모르는 데이터도 척척 받아옵니다. 인간미는 부족하지만, 성능은 발군으로 마루치 공략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 어릴 때 사모했던 과외 선생님 때문에 격투기에 입문했다는데, 너무 강해진 나머지 상대방이 도망갔다
쿠르스가와 아야카: 세리카의 동생. 경파한 성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호감이 가던 캐릭터 중 하나인데, PS판에서 공략이 가능했을 땐 데이트에서 포장마차 라면을 함께 먹는 것으로 마무리됐을 겁니다. 참고로 가슴이 토모코와 동급으로 서열 공동 2위.
세바스찬: 이 사람을 빼놓을 수는 없죠. 인간 흉기인 집사 할아범입니다. 일본식 저택에 영국풍을 빙자한 초인 집사를 두는 전통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 마사시의 상쾌한 미소는 많은 남자를 그렇게 게...2..로
사토 마사시: 마사시와의 우정 엔딩은 수많은 떡밥을 남겼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캐릭터로 마루치 엔딩을 위해 플레이 하다 까딱 잘못하면 마사시 루트로 직행되는 대형사고가 일어나고는 했습니다. 참고로 ‘투하트’는 모든 엔딩을 클리어해야 보상(오마케) 모드가 열렸는데, 달성 조건에는 마사시 엔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걸 완성해야 올 클리어 보상 CG를 볼 수 있었죠.
난이도가 없는것과 마찬가지인 편안한 진행
▲ 바야흐로 원피스 수영복을 입던 시대에 혼자 비키니를....
비주얼 노벨이라는 장르의 특징이지만 ‘투하트’는 난이도가 전혀 높지 않은 게임입니다. 선택지 위주로 진행되는데다 직관적으로 클릭하는 것만으로 루트를 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략하기 어려운 캐릭터도 존재하지 않고, 몇 번 클릭하면 금새 일방통행 스토리로 진입되어 엔딩까지 편안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편안하게 스토리를 읽어 가며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대중의 심리적 피로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플레이를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극히 적은 게임으로 만들어 주었죠. 라이트한 게임성이 몰입도를 증가시키는 데 한몫을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도전하고자 하는 의욕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보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게임이었다고 할까요.
이처럼 ‘투하트’가 크게 성공하면서 일본에서는 훌륭한 게임성을 갖춘 복잡한 게임이 아니어도 스토리 텔링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에서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게임성을 단순히 시스템과 조작에서만 끌어오지 않고, 스토리와 분기, 다양한 연출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니까요.
또, 전연령판으로 만들어진 이식작이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보여줄 게임성이 없으면 야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세간의 통념에도 일침을 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후로는 이러한 게임이 활발히 배출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 덕분에 제작 단가가 낮은 게임으로도 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Key의 멤버들이 Tactics를 떠나 창업하게 된 계기나 TYPE-MOON이 동인 시장에서 활동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단초를 ‘투하트’가 제공했다고 보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떠한 영향을 남겼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투하트’가 현존하는 미소녀 비주얼 노벨 게임 계통의 효시가 되었음 만은 분명합니다.
좀 낡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투하트’는 여전히 잔잔한 감동을 주는 고전입니다. 미소녀메카 라인업에 없어서는 안 될 타이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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