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이블 위딘, 공포도 없고 재미도 없고
2014.10.21 18:28게임메카 이찬중 기자
▲ '디 이블 위딘'이 오는 14일 정식 발매되었다 (사진출처: 공식 웹사이트)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의 아버지, 미카미 신지가 개발에 참여한 호러 서바이벌 어드벤처 게임 ‘디 이블 위딘(The Evil Within)’이 14일(화) PC로 정식 발매됐다.
이 게임을 처음 봤을 때, 기자는 ‘진짜 제대로 된 공포 작품이 나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와 ‘박스맨’이나 ‘루빅’ 등 불사에 가까운 괴한들에게 쫓기는 긴박감은 근 몇 년 동안 접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작 ‘디 이블 위딘’의 본 모습은 기자의 상상과 완전히 달랐다.
▲ '디 이블 위딘' 런칭 트레일러 영상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채널)
진짜 공포 대신 ‘바이오 하자드 4’식 액션을 보여주다
‘디 이블 위딘’은 잔혹한 대량 학살의 현장을 동료와 조사하러 간 형사 ‘세바스찬 카스텔라노스’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건을 조사하던 중 세바스찬은 괴한 ‘루빅’에 의해 광기의 세계에 떨어지게 된다. 거기서 그는 악몽에나 나올 법한 괴물에 쫓기며, 뒤틀린 세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실제로 ‘디 이블 위딘’의 프롤로그(챕터 1)에서 보여주는 공포는 수준급이다. 인간 도살장에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몸을 앞 뒤로 흔들어 칼을 뽑는 연출에서는 언제 내 차례가 올지 모르는 초조함을, 전기톱을 든 괴한으로부터 발목을 다친 상태에서 절뚝거리며 도망칠 때는 그야말로 극한의 긴박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특히 칼날 함정이 아슬아슬하게 좁혀올 때의 공포는 심장을 쪼그라뜨릴 정도였다.
▲ '디 이블 위딘'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는 주인공 '세바스찬'
▲ CCTV를 통해 맞닥뜨린 괴한 '루빅'에 의해 광기의 세계에 떨어진다
▲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곳은 바로 도살장, 어떻게든 잠긴 문을 열고 탈출해야 한다
그러나 프롤로그에서 맛봤던 이런 심장 쫄깃한 공포는 이후 다시 경험할 수 없었다. 프롤로그 이후부터는 게임이 ‘바이오 하자드 4’처럼 다양한 종류의 총과 맨주먹으로 적을 압도하면서 쓰러뜨리는 액션 위주로 바뀐다. 그 원인은 바로 초반부터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와 세바스찬이 펼칠 수 있는 액션에 있다.
프롤로그에서 보여준 것과 달리, 게임 내 세바스찬은 결코 힘없이 도망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주먹으로 좀비랑 비슷한 ‘헌티드’를 때려 쓰러뜨리고, 은밀히 뒤로 가서 머리를 찌르는 등 잠입 액션의 주인공 마냥 강하다. 여기에 튜토리얼 이후부터는 강력한 무기인 석궁을 얻을 수 있는데, 폭탄 화살부터 마비 화살까지 다양한 상태이상을 일으킬 수 있어 전기톱을 든 보스나 게임의 마스코트인 ‘박스맨’을 상대할 때도 밀리지 않는다. 이처럼 세바스찬이 보여주는 강력함은 전반적인 게임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공포를 큰 폭으로 축소시켰다.
▲ 총을 들어서 그런지 왠지 안심이 된다
▲ 가끔 '세바스찬'의 모습에서 '레온'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잘 구현한 분위기에 비해, 포스 있는 보스는 일회용 취급
‘디 이블 위딘’는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하고, 시시각각 다른 환경으로 변하는 광기의 세계를 선보인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 괴기스러운 마을에서 탐험을 하다가도, 일순간 페허가 된 정신병원에서 깨어나는 등 정신 없이 배경이 매 챕터마다 바뀐다. ‘하우스 오브 데드’처럼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 마을부터, ‘사일런트 힐’에나 나올 법한 페허가 된 병원과 정체 모를 도살장, ‘바이오 하자드’에서 보던 저택까지 한 게임에서 다양한 공포 게임의 분위기를 모두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위기만큼이나, 공포 연출도 다양하다. 벽장이나 침대에 숨어서 적을 피할 때, 두리번거리면서 주인공을 찾거나 화나서 주위 사물을 파괴하는 주연급 괴물의 모습은 나름 인상적이었다. 이 밖에도 조용히 뒤에서 다가가면 갑자기 자폭을 하는 ‘헌티드’나, 영화 ‘주온’처럼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 ‘리-본 로라(RE-Bone Laura)’ 등 플레이어를 깜짝 놀라게 하는 요소가 많았다.
▲ 한 게임 내에서 거의 모든 공포 게임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 갑자기 튀어오른 금고에 머리를 잃을 수도 있다
‘디 이블 위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다양한 분위기와 연출에도 불구하고 각 챕터 구조가 반복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더 크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챕터는 기본적으로 ‘헌티드’를 피하거나 처치하면서 퍼즐을 수행하고, 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머리에 금고를 쓴 ‘박스맨’이나 ‘리-본 로라’ 등 챕터 주연급 괴물을 만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매번 같은 방식이 반복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공포에서 오는 긴박감보다는 지루함이 더 느껴진다.
특히 ‘박스맨’이나 ‘리-본 로라’ 등 죽일 수 없을 것 같은 존재감의 보스는 막상 실제 게임에서 등장 챕터마다 주인공에게 살해당한다. 물론 나중에 다시 등장하지만, 한번 쓰러뜨린 적이라 그런지 그 존재감에서 오는 공포는 이미 많이 희석된 후다. 이처럼 이런 강렬한 면모의 보스들을 한 챕터에서 끝내버렸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 퍼즐도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단순하지만, 선택에 따라 바로 즉사할 수도 있다
▲ '디 이블 위딘'의 마스코트(?)인 '박스맨'도 주인공에게 당한다
이 밖에도, 공포 분위기를 깨는 소위 ‘옥의 티’ 요소들은 게임의 몰입을 방해했다. 가령 형사라는 직업을 지니고, 주먹으로 ‘헌티드’를 무한정 가격할 수 있는 세바스찬이 단지 2~3초 뛰었다고 혼자서 헉헉 되는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뛰는 모션마저도 어색해 ‘박스맨’에게 쫓기는 목숨이 걸린 순간에도 통통 뛰는 세바스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나마 있던 긴박감마저 없어져버렸다.
뿐만 아니라 머리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도 사는 ‘헌티드’가 두부에 칼을 꼽았다고 죽고, 한번 사용하면 파괴되는 도끼 등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부분이 게임 곳곳에 산재한다. 광기의 세계라는 설정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아무래도 부족한 현실감이 공포를 줄인 것은 확실하다.
▲ 총을 쏘기도 전에 이미 머리의 반이 날라간 '헌티드'도 많다
▲ 호흡기 질환이 의심되는 세바스찬의 모습
‘바이오 하자드 4’와는 다른 노선, 실제론 같은 게임성
‘디 이블 위딘’은 광기의 세계라는 설정에 맞춰서 다양한 공포 게임 분위기를 한 게임에 잘 엮어냈다. 언뜻 ‘사일런트 힐’과 비슷해 보이지만,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무한히 변화하는 세계에서 오는 공포는 꽤 신선했다.
다만, 프롤로그 이후에는 공포 게임이 아니라 액션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든다. 강력한 주인공이 다양한 무기와 액션을 펼치면서 강력하고 기괴하게 생긴 보스를 대처하는 스테이지 구조는 아무래도 공포를 유발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크소울’처럼 어려운 난이도의 액션게임을 플레이 하는 듯 했다. 여기에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면서 플레이어를 압박해야 하는 보스가 일회용으로 쓰이고 버려지기까지 해서, 원래 게임에서 추구하던 쫓기는 공포는 많이 퇴색되었다.
전체적으로 총평을 내렸을 때, ‘디 이블 위딘’은 본래 추구하려던 공포가 아닌, 호러 콘셉의 액션게임이다. ‘바이오 하자드 4’같은 호러 액션 게임을 원한다면 몰라도, 순수한 공포를 느끼기 위한 작품으로는 추천하지 않는다.
▲ 가끔 '루빅'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놀래키기도 한다
▲ 게임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정체불명의 기계
▲ 후반부에서는 프롤로그에서 흩어진 동료와도 같이 행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