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왕] 기저귀 장착 완료… 혼비백산 '바이오하자드 7' VR
2017.02.06 18:33 게임메카 멀미왕
※ [멀미왕]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전문가 ‘멀미왕’이 아직은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VR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쉽고 친절하게 전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이제껏 수백여 VR콘텐츠를 직접 체험하고, 이에 대한 영상 리뷰를 진행 중인 ‘멀미왕’에 대한 소개는 인터뷰(바로가기)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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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산골에 사시는 이모님 댁에 찾아가곤 했습니다. 모처럼 신나게 뛰놀 수 있는 그야말로 방학 필수코스였죠. 옆 마을까지 진출해 실컷 놀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주위가 어두컴컴해지자 저도 모르게 울먹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모님 댁에 돌아가려면 꽤 오랫동안 논두렁과 개울을 지나 산길까지 거쳐야 하는데 가로등조차 없거든요. 조심스레 천천히 가자니 어디선가 귀신이 뛰쳐나올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잔뜩 겁에 질려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전속력으로 뛰어가버렸죠.
‘바이오하자드 7’을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로 즐기며 문뜩 그 시절 추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호러게임에서 VR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나더군요. 전체적인 게임성에 대한 평가는 게임메카 리뷰로 갈음하고, 여기선 VR 체험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겠습니다. VR에서 공포가 극대화되는 이유는 현장감의 차이입니다. 일반 모니터로 게임을 하면 자연스레 주변을 종종 곁눈질하게 되지만, VR기기는 기존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고 플레이어를 게임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덕분에 불 끄고 즐기기 정도와는 비교도 안되게 무섭죠.
▲ 각오 단단히 하길, PS VR 장착하고 들어가 보자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우리의 뇌는 거의 모든 정보를 시각과 청각에서 얻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아니라고 되뇌어도 눈 앞에 괴물이 덮쳐오면 놀라 비명 지르고 살기 위해 버둥거리기 마련. VR은 어둠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과 생존을 위한 본능을 자극해요. 호러게임과의 궁합은 상상 이상입니다. ‘바이오하자드 7’는 시야만 VR로 잡아주고 플레이는 게임패드로 평범하게 합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슬라이드 무빙 방식을 사용하죠. 상황에 따라선 격하게 뛸 수도 있는데, VR에 최적화된 텔레포팅 방식에 비해 멀미를 호소할 우려가 있습니다.
VR 플레이에 익숙한 멀미왕도 장시간 붙잡고 있긴 힘들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순간적으로 위치를 이동하는 텔레포팅 방식을 서바이벌 호러게임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따릅니다. 괴물이 막 쫓아오는데 유유히 먼 곳으로 이동하면 황당하겠죠. 현실성도 떨어질 테고요. 그나마 좌우로 이동할 때 순간적으로 몸을 틀 듯 움직이는 등 멀미를 최소화하려는 배려가 엿보였습니다. 아주 높고 안정적인 프레임이 유지되지 않는 이상 좌우를 둘러보는 순간 멀미가 심해지거든요. 다만 이 때문에 되려 VR에 대한 몰입이 깨질 우려는 있네요.
▲ 다소 멀미를 호소할 우려는 있다. '바하 7' VR 플레이 (영상제공: 멀미왕VR)
짧은 오프닝 영상을 감상한 후, 차를 몰아 해질녘 저택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 제 가상현실 속 아내 ‘미아’가 갇혀있다는데… 차분히 오솔길을 지나다 마주한 기이한 문에 제 눈을 의심했어요. 소의 사체를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만든 일종의 부적이었죠. 마치 실존하는 것 같은 흉물 아래로 몸을 숙여 지나가는데 어찌나 징그럽고 오싹 한지요. 단번에 정상적인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힘겹게 폐가에 들어서니 사람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데, 금방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듯한 긴장감에 나아갈 수가 없더군요.
이제 겨우 한 발짝 들어섰을 뿐인데 벌써부터 PS VR을 벗어 던지고 싶습니다. 저택의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됐죠. 어찌어찌 당도한 지하실은 한층 더 심각한데, 더러운 구정물에 들어가는 것도 불쾌한데 아니나 다를까 시체가 튀어나와 실신할 뻔 했습니다. 그냥 게임을 즐길 때는 모니터 너머의 캐릭터를 ‘타자화’하지만, VR에선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까지 코 밑까지 차올라 출렁이고 있으니 고역이 따로 없습니다. 지나치게 섬세한 묘사 때문에 몸에 냄새가 밸 것만 같아요. 그래도 감격의 상봉을 하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겠죠.
▲ 이게 코 앞에서 불쑥 튀어나온 다고 생각해보라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어두컴컴한 지하실을 더듬듯 지나 드디어 ‘미아’를 찾았습니다. 사물뿐 아니라 사람도 실제 인물을 스캔하여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듯 실감나더군요. 어서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절실한 말과 함께 남편을 걱정하는 모습에 절로 감정까지 이입이 됩니다. 허나 ‘바이오하자드’가 이렇게 쉬이 진행될 리 없죠. 겨우 만난 ‘미아’는 이내 돌연 비명을 지르며 사라져버리고, 홀로 두리번거리는데 아까 올라왔던 계단 밑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옵니다. 도저히 저 아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나아갈 용기가 안 나는데…
바로 그 때, 어둠을 뚫고 사람의 형체가 계단을 기어올라 옵니다. 온 몸의 피가 마르고 패드를 잡은 손을 움직일 수조차 없어요. 일순 코앞까지 들이닥친 괴물의 정체는 놀랍게도 흉측하게 일그러진 ‘미아’였습니다.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게임 내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 중 하나로 꼽는데, VR로 마주하니 순간적으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광기에 찬 ‘미아’가 휘두르는 흉기가 눈앞에서 횡행하고, 주인공이 베이는 모습보다 그 쇳소리가 더 참기 힘듭니다. 실랑이 끝에 날카로운 칼날이 손바닥을 꿰뚫자 온몸의 털이 솟구치더군요.
▲ 일순 게임 속 캐릭터와 멀미왕 모두 굳어버렸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벌써 게임을 즐긴 분들은 아시겠지만, 칼침 정도는 기나긴 고행의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전기톱과 삽, 도끼, 거대 말벌, 사제 폭탄까지 별별 것에 고통 받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VR이 주는 공포의 절정은 공격 당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그보단 도망칠 때가 훨씬 심하죠. 헤드 트래킹은 마우스나 게임패드에 비해 시점 전환이 더디고 힘겹습니다. 손목만 휙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고개를 틀어야 하니까요. 때문에 누군가 쫓아오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과, 뒤를 확인할 때 심리적 압박이 굉장합니다. 고개를 돌렸는데 눈앞에 있기라도 하면!
휴, 적나라하도록 끔찍한 현장을 몸소 겪다 보면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아요. 말 그대로 ‘혼비백산’입니다. 다만 몇몇 아쉬운 점도 보이는데, 무엇보다 모션 컨트롤러를 전혀 지원하지 않습니다.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면 더욱대단한 체험이었을 텐데요. 특히 VR에서 게임패드로 에임 맞추기가 너무 힘듭니다. 가뜩이나 ‘헤드샷’이 아니면 총알만 낭비하게 되는 게임인데 말이죠. 만약 나중에라도 PC판이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 등 고성능 기기와 룸스케일 VR을 지원한다면 이야말로 궁극의 호러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 VR에서 에임 맞추기 너무 어렵다, 모션 컨트롤러 좀!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