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실제 역사와 문화에서 탄생한 세계 '워해머 판타지'
2017.06.15 09:43 게임메카 이새벽 기자
▲ '토탈 워: 워해머 2'에 나오는 '리자드맨' 소개 영상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얼마 전 공개된 ‘토탈워: 워해머 2’ 영상의 주인공은 단연 리자드맨 종족이었다. 그런데 ‘워해머 판타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상을 보고 무척 생소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대충 넝마나 걸치고 작살이나 던지는 미개한 괴물로 묘사되던 리자드맨이, 여기서는 아즈텍 풍의 황금장식으로 치장하고 공룡에 탄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름은 리자드맨이지만, 사실상 완전히 다른 종족으로 느껴진다.
다른 종족들도 마찬가지다. 전세계로 이어지는 땅굴제국을 건설한 쥐인간, 잔인한 엘프 해적들. 분명히 어디서 한 번씩 본 것 같은 익숙한 소재지만, 독특한 재해석으로 다른 작품과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이처럼 ‘워해머 판타지’의 종족들은 너무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특이한 느낌을 준다.
▲ 엘프지만 우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잔인하고 야만적인 '우드 엘프'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이렇게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이 흔한 소재로도 차별화되는 결과물을 보여주는 비결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실제 지구의 민족과 문화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워해머 판타지’는 특이하게도 실제 역사, 국가, 지리 등을 적극 도입해 구성한 세계관이다. 덕분에 ‘워해머 판타지’는 온갖 괴물과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이고 진지하게 느껴지며, 공상에만 입각한 판타지 세계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준다.
판권 분쟁 없는 실제 문화, 아이디어의 원천이 됐다
흔히들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 하면 방대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오래됐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세하고 치밀한 설정체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사실 ‘워해머 판타지’는 초창기부터 세밀하고 사실적인 설정을 중시한 덕에 인기를 얻어왔다.
1983년 처음 제작됐을 때만 해도 ‘워해머 판타지’는 세계관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조촐한 미니어처게임 시나리오 모음집이 전부였다. 미니어처게임은 손가락 한두 마디 크기의 모델들을 가지고 전투를 벌이는 보드게임의 일종인데, 오늘날 RTS게임의 전신에 해당한다.
▲ 미니어처게임은 이렇게 실제 미니어처 모델을 늘어놓고 하는 놀이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당시의 미니어처게임은 오늘날의 디지털게임과 달리 시각적인 효과로 눈을 잡아 끌 수도, 쉽게 하기도 힘든 접근성 낮은 취미였다. 그렇다 보니 미니어처게임사는 게임 외적으로도 상품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구매하게 만들 만한 재미요소가 필요했다. 그 해답이 바로 세밀한 설정과 스토리였다. 장난감을 팔기 위해 장난감 만화를 만드는 것처럼, 미니어처를 팔기 위해 미니어처 설정과 스토리를 만들었던 셈이다.
영국의 게임즈 워크샵이 제작한 ‘워해머 판타지’도 이처럼 스토리의 중요성을 눈여겨본 미니어처게임 중 하나였다. ‘워해머 판타지’는 초기부터 보드게임에 일정한 배경설정과 스토리를 도입했다. 물론 초기에는 이러한 시나리오도 몇 페이지짜리 별 것 아닌 내용에 불과했다. 예컨대 첫 번째 시나리오인 ‘운명의 지구라트’는 정글을 탐험하던 드워프 원정대가 고블린 떼에게 포위되어 어느 지구라트 위에서 필사항전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지만, 당시에 ‘워해머 판타지’는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과 스토리를 설정해주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워해머 판타지’의 초기 판본은 게임 규칙에 오류가 있거나, 오탈자가 있는 채 인쇄되는 등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었다. 고작 몇 페이지에 불과한 시나리오가 생각보다 큰 호응을 얻자, 고무된 게임즈 워크샵은 더 많은 시나리오와 설정, 더 나아가서는 세계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의 확장은 곧 여러 저작권분쟁의 위험에 맞닥뜨리게 됐다. 실제로 게임즈 워크샵은 초기에 마이클 무어콕의 판타지 소설 ‘엘릭 사가’에서 ‘혼돈의 권세’라는 설정을 따와 사용하기도 했고, 아슬아슬하게 ‘반지의 제왕’과 겹치는 부분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게임즈 워크샵은 세계관 확장에 앞서 분쟁 소지가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을 찾아야 했다.
저작권 문제에 대한 해답이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그 즈음부터 게임즈 워크샵이 ‘워해머 판타지’에 실제 역사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1986년 출판된 ‘워해머 판타지 롤플레이’를 기점으로 정점에 달했다.
▲ '워해머 판타지 롤플레이' 1판 표지 이미지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게임즈 워크샵의 TRPG인 ‘워해머 판타지 롤플레이’는 실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 설정들로 세계관을 더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다듬어주었다. 특히 ‘워해머 판타지 롤플레이’는 미니어처게임 ‘워해머 판타지’와 달리, 군대 단위 전투 대신 소규모 인원의 사실적인 모험에 집중했다. 그렇기에 이 게임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쥐잡이나 노상강도 같은 실제 중세의 직업 생활도 해야 하는 등, 전쟁뿐 아니라 일상의 면면까지 세부적으로 설정하여 세계관의 사실성이 배가됐다.
▲ '워해머 판타지 롤플레이'에서는 직업까지 정해야 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워해머 판타지 롤플레이’는 안타깝게도 상업적인 성공을 누리지는 못했다. 미니어처 모델을 많이 쓰지 않는 TRPG 특성상 미니어처 모델 판매촉진효과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해머 판타지 롤플레이’의 설정은 큰 인기를 얻었고, 이에 게임즈 워크샵은 실제 세계를 반영한 설정을 점차 세계관 전반으로 확대시켰다. 그렇게 ‘워해머 판타지’는 점차 판타지와 실제 역사가 묘하게 결합된 독특한 모습으로 성장해나갔다.
이러한 ‘워해머 판타지’의 사실주의적 노선은 아예 게임 속 지리, 국가, 역사의 성립에도 영향을 주었다. 나중에는 각 종족도 활동지역에 따라 특정한 문화 콘셉트를 부여 받아 재조명됐는데, 이 때 만든 개성 넘치면서도 사실성 있는 종족성은 ‘워해머 판타지’의 인기에 큰 기여를 했다.
유럽을 바탕으로 삼은 ‘워해머 판타지’의 주무대, ‘올드 월드’의 거주민들
‘워해머 판타지’는 세계지도부터 실제 지구의 모습과 흡사하게 생겼다. 이 세계는 크게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에 해당하는 세 개의 대륙으로 나뉘며, 각 종족의 거점은 이 세 대륙에 나뉘어 있다. 또한 각 종족의 문화적 특징은 실제 모티프로 삼은 지역의 문화권에 대응한다.
▲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 지도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우선 가장 자주 다루어지는 배경을 보자. 본토에 해당하는 ‘올드 월드’는 한 눈에 봐도 유럽처럼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16세기에 유럽인들은 새로 발견한 미대륙과 차이를 두기 위해 옛날부터 알고 있던 유럽을 ‘구세계’로 불렀는데, ‘워해머 판타지’는 그 명칭을 그대로 따와 대륙 이름으로 삼은 셈이다. 물론 흑해에 해당하는 바다가 없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월드 엣지 산맥’이 있는 등 차이도 조금 있지만, 전반적인 해안선과 대륙의 모양새는 실제 유럽과 매우 흡사하다.
‘올드 월드’의 중심이 되는 국가는 단연 ‘엠파이어’다. ‘엠파이어’는 약 16~17세기 신성로마제국을 모티프로 삼은 가상제국이다. ‘엠파이어’는 신성로마제국처럼 선제후들이 선거로 황제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통치된다. ‘엠파이어’ 군대는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여 긴 창과 화승총 아쿼버스로 무장한 보병방진을 핵심으로 삼는다. 여기에 대포와 풀 플레이트로 무장한 기사단도 등장한다. 근세 유럽 군대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따온 듯하다.
▲ 보병 방진과 화약무기가 주력인 '엠파이어'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세부적인 면을 보면 ‘엠파이어’의 근세 신성로마제국를 바탕으로 했다. 우선 지명도 한결같이 ‘알트도르프’, ‘미든하임’, ‘오스틀란트’처럼 독일 풍이다. 또한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대인 만큼, 도시도 더럽고 오물이 흐르는 거리에, 제멋대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목조건물, 수많은 빈민 등 사실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많은 판타지 게임에서 도시를 아름답고 깨끗한 모습으로 그리던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그 외에도 여러 국가들이 실존한 국가와 민족을 바탕으로 삼았다. 무역으로 번영했고 용병대에게 방위를 맡기는 도시국가연합 ‘틸레아’는 르네상스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본 땄다. 중동의 침략자 ‘아라비’를 열정적으로 막아내는 소국 ‘에스탈리아’는 레콩키스타 시기 스페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 '노스카' 야만인은 바이킹처럼 배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약탈을 일삼는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괴물 종족도 실제 존재했던 민족성을 차용해 설정을 짰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악마 들린 사악한 약탈자이자 침략자인 ‘워리어 오브 카오스’는 역사 속 유럽의 침략자들과 연관이 있다. 북쪽 땅 ‘노스카’는 바이킹들이 고향 스칸디나비아를 바탕으로 삼았다. 애초에 ‘워리어 오브 카오스’부터 배를 타고 남쪽으로 약탈하러 다니는 뿔 달린 투구의 전사들이니, 바이킹에서 얻은 영감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북동쪽 스텝 지대 출신의 ‘워리어 오브 카오스’ 중에는 ‘훙(Hung)’족도 있는데, 작은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기마 약탈자라는 설정을 보면 아무리 봐도 실제 역사 속의 훈족을 모델로 삼은 듯하다.
▲ 케르눈노스의 이미지를 차용한 '우드 엘프' 영웅 '오리온'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마지막으로 ‘브레토니아’ 인근의 어둡고 무시무시한 숲 ‘아텔 로렌’에 사는 ‘우드 엘프’는 뒤틀리고 사악한 반인반수 종족 ‘비스트맨’과 앙숙을 이루는데, 이는 켈트 신화의 투아하 데 다난과 포모르 사이의 대립에서 차용한 듯한 이미지다. 실제로 ‘우드 엘프’ 캐릭터를 보면 켈트 신 케르눈노스의 모습을 그대로 따온 듯한 ‘오리온’이 있다거나, ‘아텔 로렌’ 숲에 들어서면 바깥과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등, 많은 면에서 유사성을 보여준다.
부와 괴물들의 땅, ‘나가로스’와 ‘러스트리아’의 종족들
실제 역사 속에서 유럽인들은 미대륙을 위험과 기회의 땅으로 보았다. 험한 자연과 질병, 신기한 동물들이 존재하는 위험천만한 곳인 동시에, 광활한 천연자원과 황금이 묻힌 대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워해머’에 존재하는 판타지 버전 미대륙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 노예로 제국을 쌓아올린 '다크 엘프' 종족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올드 월드’의 바다 건너 서쪽에 위치한 거대한 대륙은 북미에 해당하는 ‘나가로스’와 남미에 해당하는 ‘러스트리아’로 나뉜다. 이 중에서 ‘나가로스’는 고향에서 추방된 엘프인 ‘다크 엘프’의 땅이다. 한때 신비한 섬 ‘울쑤안’에 살았던 이들은 정치적 대립으로 동족과 결별하고 바다를 건너 발견한 ‘나가로스’에 정착했고, 이제는 방대한 토지와 노예를 바탕으로 거대한 제국을 이룩해 세계정복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은 묘하게 미국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미국도 고향인 영국을 떠나서 북미에 정착했고, 방대한 영토와 노예제도로 거대한 국가를 세웠으니 말이다. 세계패권을 노린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 정도면 의외로 공통점이 꽤 있는 셈이다.
여기에 남쪽 ‘러스트리아’에는 고대의 신들을 섬기는 파충류 종족 ‘리자드맨’이 서식한다. ‘워해머 판타지’의 ‘리자드맨’은 다른 판타지 게임들과 달리, 정글에 방대한 석조 피라미드와 황금 도시를 건설할 정도로 뛰어난 문명을 지닌 고대종족으로 묘사된다.
▲ 공룡을 탄 중남미 '리자드맨'은 '워해머 판타지'에서만 볼 수 있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리자드맨’은 선천적으로 뛰어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화약무기나 기계장치를 발명하지 않고 옛 문명수준에 안주하는 태도나, 신들을 달래기 위해 산 제물의 심장을 꺼내는 희생제의를 치르는 등 잔인한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리자드맨’ 종족의 모습은 아즈텍 문명을 연상시킨다. 또 별자리로 점을 치고 예언의 날을 준비하는 등 이들은 마야 문명과 흡사한 면도 있으니, 중남미 원주민 문화를 전반적으로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 '러스트리아' 원정대 콘셉의 미니어처 모델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재미있는 점은 남미에 해당하는 ‘러스트리아’에 고대종족이 남긴 막대한 황금과 마법용품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엠파이어’, ‘틸레아’, ‘에스탈리아’ 등의 국가는 실제 유럽인들이 그럤던 것처럼 ‘러스트리아’로 원정대를 보내 식민지 건설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실제 역사 속 미대륙 원주민과는 달리, ‘러스트리아’의 ‘리자드맨’은 무지막지한 힘과 고도의 마력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것. 덕분에 ‘올드 월드’ 원정대의 숱한 침략에도 불구하고 ‘러스트리아’는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정글로 남아있다.
비록 한국은 없지만… 다른 지역 문화도 충실히 반영
그 외에도 ‘워해머 판타지’ 세계에는 ‘알비온’(영국), ‘아라비’(아랍), ‘카타이’(중국), ‘키슬레프’(폴란드), ‘네헤카라’(이집트), ‘니폰’(일본), ‘사우스랜드’(아프리카), ‘실바니아’(루마니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실존 문화와 국가, 민족을 판타지 버전으로 바꾸어놓은 설정이 등장한다.
▲ '키슬레프'의 '윙드 랜서'는 폴란드의 후사르 기병대 이미지를 그대로 따 왔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지금까지 소개했던 종족 및 진영과 마찬가지로, 여기 사는 종족들도 대체로 실제 민족과 문화를 바탕으로 설정됐다. 예를 들어 ‘네헤카라’의 언데드 종족 ‘툼 킹’은 사후세계에서 영생을 누리길 열망하던 고대 이집트인의 소망을 그로테스크하게 비틀어 만든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황무지에 사는 ‘카오스 드워프’는 섬세히 땋은 긴 수염을 기르고 신화 속 괴물 ‘라마수’를 타고 다니는 등, 수메르나 페르시아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 동방에서 온 약탈자 종족 '오우거'는 묘하게 몽골인을 연상시킨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물론 그렇다고 모든 종족이 반드시 실제 역사에 근간을 둔 것은 아니다. ‘하이 엘프’는 아틀란티스를 콘셉트로 삼았다. ‘드워프’는 절대 원한을 잊지 않는 톨킨의 드워프를 거의 그대로 따왔다. 오크도 포자로 번식한다는 독특한 특징이 있지만, 실재 민족이나 문화를 차용한 종족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요종족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제 문화에 기초해 설정됐다. 덕분에 ‘워해머 판타지’는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세계관 분위기와 종족 콘셉트를 이해시킬 수 있었으며, 여느 판타지와는 달리 상당히 치밀하고 있을법한 종족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의외로 종족 별 특징 강조 안 했던 ‘워해머 판타지’ 게임들
사실 초기에 시도된 ‘워해머 판타지’ 게임화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물론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다양한 종족의 개성을 확실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워해머 판타지’의 가장 큰 장점을 살리지 못한 격이었다.
최초의 ‘워해머 판타지’ PC게임이었던 ‘섀도우 오브 더 혼드 랫’도 종족 별 특징들을 살리지 않은 작품이었다. ‘셰도우 오브 더 혼드 랫’과 그 후속작 ‘다크 오멘’은 원작 미니어처게임 특유의 부대 단위 전술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세계관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지 않았다. 종족 선택도 인간만 가능했고, 적으로 등장하는 종족도 오크, 고블린, 언데드, 쥐인간 ‘스케이븐’이 고작이었다. 결국 이 두 게임은 같은 시기에 나왔던 비슷한 게임인 ‘미쓰’ 시리즈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 세계관 특유의 분위기는 잘 보여주지 못했던 '다크 오멘'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 후로 나온 ‘워해머 판타지’ 게임도 흥행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 중 대부분은 이전에 ‘섀도우 오브 혼드 랫’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관 특유의 개성 있는 여러 종족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이러한 ‘워해머 판타지’ 게임화의 실패는 2008년에 발매된 ‘워해머 온라인: 에이지 오브 레커닝’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게임은 지나치게 PVP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세계관의 분위기와 여러 종족의 특이한 모습을 조명해주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으며, 결과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차별화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을 굳이 꼽자면 2016년 출시된 ‘토탈 워: 워해머’ 정도 뿐이다. 이 작품은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 게임 중 최초로 여러 종족의 특징을 부각시켜 다방면으로 보여주었는데, 이 점이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실제로도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는 ‘토탈 워: 워해머’의 성공 이후 다양한 종족 팩 DLC를 발매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차기작 ‘토탈 워: 워해머 2’ 또한 같은 이유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 출시를 앞두고 있는 '토탈 워: 워해머 2'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이러한 점을 미루어볼 때, 독특한 여러 종족 콘셉트를 살린다면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 여전히 큰 인기를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본사 게임즈 워크샵이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을 종결 지었다는 것이다.
사실 게임즈 워크샵은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을 지난 2014년 이미 중단시켰다. 이유는 미니어처 모델 판매 부진 때문이었다. ‘워해머 판타지’는 사악한 혼돈의 신들과 그 하수인들에 의해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며 끝났다. 대신 게임즈 워크샵은 살아남은 ‘워해머 판타지’의 신들과 영웅들이 또 다른 세계인 ‘모탈 렐름’을 찾아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에이지 오브 시그마’ 세계관을 공개했지만, 이 세계관은 실제 민족성이나 문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완전히 공상적인 설정이었다.
▲ '워해머 판타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에이지 오브 시그마'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다만 앞으로도 ‘워해머 판타지’ 세계관을 게임에서 보지 못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이미 ‘토탈 워: 워해머’ 시리즈만 해도 게임즈 워크샵의 ‘워해머 판타지’ 종결 이후 나온 작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