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행] 게임업계 슬슬 얼굴 비추는 RWBY, 넌 누구냐
2018.11.01 17:28 게임메카 이새벽
최근 하나의 IP로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미디어 믹스가 유행이다. 이러한 세태는 게임업계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데, 조금 유행한다 싶은 만화나 영화는 금새 게임으로도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 보니 게임에만 관심이 있는 게이머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던 만화나 영화가 갑자기 게임업계 유명 IP처럼 언급되는 상황을 낯설게 느낀진다.
‘RWBY’도 바로 그러한 IP 중 하나다. 어디서 등장했는지, 뭐라 발음해야 할 지도 모를(실제로는 ‘루비’라고 한다) 저 IP는 올해 초에는 나름 전통 있는 대전게임 ‘블레이블루’에 등장하더니, 지난 10월에는 아예 NHN 엔터테인먼트에서 독자 게임으로 출시했다. 그 외에도 알게 모르게 여러 작품에서 얼굴을 비추며 슬슬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대체 ‘RWBY’는 어떤 IP일까? 특징은 무엇이고, 최근 게임업계에 진출해 보여준 성과는 무엇이 있을까? 이번 주에는 미디어 믹스로 게임업계 진입을 노리고 있는 ‘RWBY’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자.
게임 엔진으로 드라마 만들던 루스터 티스, 자체 IP에 도전하다
▲ 루스터 티스의 기묘한 로고 (사진출처: 루스터 티스 공식 홈페이지)
‘RWBY’와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우선 이 IP를 만든 회사인 루스터 티스(Rooster Teeth)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루스터 티스는 웃긴 영상이나 만화를 만드는 회사로 전문적인 게임 개발업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RWBY’가 게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 중 하나는 루스터 티스가 게임으로 영상을 만들던, 게임에 뿌리를 둔 기업이기 때문이다.
루스터 티스는 본디 영상물 제작업계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이 의기투합하며 설립됐다. 본디 이 회사의 공동설립자 버니 번스와 맷 헐럼은 대학에서 만나 1997년 ‘더 스케쥴’이라는 독립영화를 만들며 영상물 제작에 뛰어들었다. 당시 이들은 그리 이름 있는 작품에 참여하지는 못했었는데, 기회는 뜻밖에 취미를 즐기던 중 찾아왔다. 재미 삼아 하던 게임 리뷰가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 지금은 사라진 드렁크게이머즈 사이트 (사진출처: 웹 아카이브)
2000년 이들은 취미로 게임 리뷰 사이트인 드렁크게이머즈(drunkgamers)를 개설했다. 이 기묘한 사이트는 필진이 술을 마시고 반쯤 취한 상태로 게임을 하고 쓴 리뷰를 게시하는 사이트였는데, 여기에는 가끔 이들이 직접 만든 짧은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러한 영상은 대개 게임 엔진을 이용해 만든 웃기는 패러디나 짧은 드라마였다.
그런데 취한 게이머들의 게임 영상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아예 전문적으로 게임을 이용한 영상 콘텐츠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2003년, 취한 게이머 필진은 영상물 제작업체 루스터 티스를 설립했고, 그 직후에는 이전부터 ‘헤일로’를 이용해 만들고 있던 코믹 영상물 ‘레드 vs. 블루’를 다듬어 공개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 ‘헤일로’ 시리즈 엔진으로 제작한 ‘레드 vs. 블루’는 아직도 연재 중이다 (영상출처: ‘레드 vs. 블루’ 공식 유튜브 채널)
2004년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매주 ‘레드 vs. 블루’ 시청자 수는 65만 명에서 최대 백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레드 vs. 블루’ 인기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번지 스튜디오는 루스터 티스에게 라이선스 비용을 내지 않고 ‘헤일로’ IP를 이용해 영상물을 제작해도 좋다는 허가를 주었고, 이를 시작으로 루스터 티스는 영상물 제작에 박차를 가해 나갔다.
그 이후에 루스터 티스는 E3와 제휴를 맺고 ‘더 심즈 2’를 이용한 코미디 드라마 ‘더 스트래인저후드’를 만들어 2006년까지 17개 에피소드를 제작했고, 2006년에는 ‘F.E.A.R.’를 활용해 ‘패닉’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들은 ‘섀도우런’, ‘슈프림 커맨더’ 등을 비롯한 여러 게임으로 영상물을 제작했고, 아직도 게임 영상 제작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다.
▲ ‘더 심즈’ 시리즈로 제작한 드라마 ‘더 스트래인저후드’ (사진출처: 루스터 티스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이처럼 2000년대 중반부터 주가를 높이기 시작한 루스터 티스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자체 IP가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지금껏 게임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게임 리소스를 활용한 영상을 만들었다. 물론 많은 게임개발업체가 홍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하에 IP 이용을 허가해주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타사의 호의에 기대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이에 루스터 티스는 2010년 고용한 유명 애니메이터 몬티 옴에게 독자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갖춘 새로운 영상물 시리즈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2013년 게임과 인터넷 콘텐츠를 주제로 매해 열리는 루스터 티스 자체 행사 RTX(Rooster Teeth Expo)에서 최초로 공개됐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애니메이션 ‘RWBY’였다.
귀여운 캐릭터와 살벌한 액션, ‘RWBY’를 흥행 시킨 두 요소
▲ 주인공 네 명의 캐릭터성으로 밀고 나가는 ‘RWBY’ (사진출처: ‘RWBY’ 위키)
사실 ‘RWBY’는 세계관 자체만 놓고 볼 때 그리 독특해 보이는 작품은 아니다. ‘RWBY’ 강점은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기발한 전투 연출에 있다. 소위 ‘캐릭터 중심(Character-driven)’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대가 되는 세계 설정과 상황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만큼, 간단한 ‘RWBY’ 세계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RWBY’ 세계는 ‘렘넌트(Remnant)’라고 불리는 조각난 대륙이다. 이 세계의 과거는 이제는 모두 잊힌 상황이지만, 무언가 거대한 재앙으로 인해 많은 것이 소실됐다는 것만은 모두 희미하게나마 짐작하고 있다. 이 세계가 ‘잔해’라는 뜻의 ‘렘넌트’로 불리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 게다가 이 세계에는 여전이 인간을 노리는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그림’이라는 괴물들이다.
▲ RWBY 주적이라 할 수 있는 ‘그림’ (사진출처: 루스터 티스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그림’은 외관상 그림자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괴물들이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들은 여러 종류가 존재하며 늑대인간, 곰, 그리폰, 드래곤 등 생김새나 특징도 각양각생이다. 이러한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그림’은 단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는데, 이는 바로 인간에 대한 멈출 줄 모르는 살의다. 인간을 죽이고 문명을 파괴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욕구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적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림’에 대해 파악된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그림’은 신체적으로 막강한 힘과 포악한 성정을 지니고 있기에 생포가 힘든 데다, 일단 쓰러지면 그 시체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흩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렘넌트’에서 ‘그림’의 존재는 인간들 사이에서 여전히 큰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 간단히 말해 미소녀가 괴물 잡는 내용이다 (사진출처: 루스터 티스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처럼 위험한 미지의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렘넌트’ 인간들은 ‘헌터’라는 전문 사냥꾼을 양성한다. 이런 설정이 으레 그렇듯 헌터는 일종의 길드가 관리하는 전문학원에서 양육되는데, 약 14세부터 신체 기능은 물론 인간 내면의 기라고 할 수 있는 ‘오라’를 개발하게 된다. 그리고 ‘오라’가 발화한 인간은 이 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초자연적인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RWBY’ 주인공들도 이러한 헌터들이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이름 첫 글자를 딴 ‘RWBY’라는 팀에 소속된 전문 ‘헌터’ 학생인데, 나이는 10대 중반이지만 모두 ‘오라’를 각성한 인간흉기들이다. 일단 미소녀 주인공인 ‘루비 로즈’부터도 고유 기술 ‘가속’을 활용해 자기 몸보다 큰 낫을 휘두르며 ‘그림’ 썰어 대는 것을 좋아하는 학살자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니 말이다.
▲ 2012년 공개된 첫 ‘RWBY’ 영상 (영상출처: 루스터 티스 공식 유튜브 채널)
여기까지 보면 ‘RWBY’가 뭐 그리 특별한 작품인가 싶을 수 있다. 실제로 범세계적인 길드가 관리하는 초인 사냥꾼들의 괴물 사냥 이야기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보여준 내용이다. 대신 ‘RWBY’는 설정이나 플롯의 힘 보다는 눈으로 보는 재미에 치중했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일상에서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모습과, 이들이 전투에서 흉기로 돌변하는 역동적인 전투 연출에 집중한 것이다.
‘RWBY’ 기획자이자 애니메이터였던 몬티 옴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세밀하고 기발한 전투 동작을 선보여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다. 프로 데뷔 후 그는 반다이남코 등 몇몇 게임개발업체에서 전투 디자이너로 재직하기도 했는데, 그 장기를 발휘해 ‘RWBY’에서도 다양한 동작이 빠르고 부드럽게 연속되며 이어지는 빠르고 힘 있는 전투 연출을 보여주었다.
▲ 렌더링 질이 떨어지는 초기 영상도 액션만은 뛰어나다 (영상출처: 루스터 티스 공식 유튜브 채널)
이렇듯 ‘RWBY’는 귀여운 캐릭터가 보여주는 깜찍한 모습과 스타일리시한 전투를 바탕으로 나름 큰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루스터 티스는 ‘RWPY’ IP를 여러 방면으로 진출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최근 이들이 집중하고 있는 것이 바로 게임이다.
게임업계 진출하는 ‘RWBY’, 어떤 작품들 나왔나?
▲ ‘블레이블루 크로스 태그 배틀’에도 등장한 ‘루비 로즈’ (사진출처: 아크 시스템 웍스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RWBY’가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은 이래 점차 게임업계에서도 다양한 게임들이 나오고있다. 애초에 제작업체인 루스터 티스가 게임이 계기가 되어 생긴 회사인 만큼, 이들의 역작 ‘RWBY’가 게임업계로 뻗어나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다.
‘RWBY’는 아직 게임업계에선 이렇다 할 대표작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빠른 속도로 다작 중인 모습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까지 나온 게임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마지막으로는 지금까지 발매된 ‘RWBY’ 게임 중 특기할 만한 작품들로 어떤 것이 있는지 간단히 짚어본다.
▲ 원작에는 충실했지만 오래 즐기기엔 다소 부족했던 ‘RWBY: 그림 이클립스’ (사진출처: 스팀)
우선 언급할 작품으로는 스팀 그린라이트를 통해 출시된 루스터 티스의 ‘RWBY: 그림 이클립스’가 있다. ‘RWBY’는 첫 공개 이후부터 팬들이 ‘워크래프트 3’ 유즈맵 등을 통해 게임화를 시도한 바 있었다. ‘RWBY: 그림 이클립스’는 이러한 팬 중 하나인 조던 스콧이 만들던 아마추어 게임이었는데, 이를 루스터 티스가 영입하며 공식 게임으로 발매한 작품이다.
최대 4인 플레이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3D 협동전 게임 ‘RWBY: 그림 이클립스’는 원작 특징인 속도감 있는 전투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팬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또한 원작 제작업체 루스터 티스가 모델링을 제공한 만큼, 원작에 매우 가까운 분위기를 자아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게임 자체는 다소 콘텐츠가 빈약하고 스토리도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 ‘블레이블루’ 주인공 ‘라그나’를 박살내고 있는 ‘RWBY’ 캐릭터 ‘양 샤오롱’ (사진출처: 스팀)
그런가 하면 2017년에는 아크 시스템 웍스의 대전게임 ‘블레이블루 크로스 태그 배틀’과도 깜짝 콜라보를 진행한 바 있다. ‘RWBY’ 주인공 ‘루비 로즈’, ‘와이스 슈니’, ‘블레이크 벨라도나’, 그리고 ‘양 샤오롱’이 전원 ‘블레이블루 크로스 태그 배틀’에 플레이 가능 캐릭터로 출전한 것이다. 단독 작품은 아니지만, 나름 전통 있는 작품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 점은 특기할 만하다.
▲ ‘RWBY: 아미티 아레나’ 공식 홍보 이미지 (사진제공: NHN 엔터테인먼트)
여기에 NHN 엔터테인먼트도 ‘RWBY’ 게임화에 동참했다. 기존에도 NHN 엔터테인먼트는 자사가 서비스하는 모바일 RPG ‘크루세이더 퀘스트’에 ‘RWBY’ 캐릭터를 등장시킨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2018년 10월에는 ‘RWBY’ 독자 모바일 게임 ‘RWBY: 아미티 아레나’를 출시했다. 이 작품은 1 대 1 사양의 라인 공성 장르로, 원작 캐릭터를 수집하고 부대를 구성하는 재미를 내세웠다.
▲ 샨다게임즈가 서비스 할 예정인 ‘RWBY’ 모바일게임 (사진출처: ‘RWBY’ 공식 홈페이지)
마지막 작품은 중국 거대 게임 유통업체 샨다게임즈에서 준비 중인 2D 모바일 벨트스크롤 게임 ‘RWBY’다. 이 게임은 아직 출시되지 않았지만,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가상 조이패드를 사용하는 ‘던전앤파이터’와 유사한 방식의 게임으로 파악된다. 샨다게임즈 ‘RWBY’ 서비스 일정 및 국내 서비스 여부는 미정이다.
이렇듯 ‘RWBY’는 최근 독자과 콜라보 양쪽으로 활발한 확장을 보이고 있다. 그 외에도 ‘RWBY’는 만화와 소설 등 여러 방면으로 미디어 믹스를 시도하고 있는 데다, 나름 규모 있는 타 업체들도 이 IP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게임화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캐릭터에 기댄 IP, 확장 얼마나 될까?
▲ 싸우는 미소녀는 좋지만… 과연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사진출처: 아크 시스템 웍스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처럼 최근 게임업계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 ‘RWBY’지만, 냉정히 말해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아직 ‘RWBY’라는 IP가 게임업계에 남긴 고유한 특징이 아직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RWBY’ 게임은 주인공 캐릭터 네 명에 기댔을 뿐, 전체 세계관이나 스토리로 높은 점수를 받은 적은 없었다.
물론 원작에서는 소수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귀여운 행동과 멋들어진 전투 연출만으로도 상당한 팬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원작이 영상물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게임에서는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큰 재미와 감동을 주기 힘들다. 게임에서 IP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IP가 게임이 제공하는 체험과 얼마나 강화시켜줄 수 있을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RWBY’ 게임들은 여전히 일방적인 캐릭터 보여주기를 우선시한 느낌이다.
과연 ‘RWBY’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살벌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외에 얼마나 흥미로운 체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 ‘RWBY’ 게임업계 진출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앞으로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