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컴알못 위한 'PC 빌딩 시뮬레이터', 자유도가 아쉽다
2019.02.07 17:39 게임메카 안민균 기자
게이머가 갖춰야 할 필수 전자제품이 있다면 단연 컴퓨터를 손꼽을 수 있다. 꼭 게임뿐만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거나, 쇼핑을 즐기는 등 다양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집에 한 대쯤은 들여놓기 마련이다.
여기서 한가지 고민이 생긴다. 쾌적한 게이밍 라이프를 위해서는 과연 컴퓨터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가? 맘 편하게 대기업 메이커 컴퓨터를 구매해 설치부터 유지보수까지 전부 서비스를 받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보편적인 사양에 맞춰 생산된 완제품 사이에서 원하는 컴퓨터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자니 게이머 본인이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한 제반 지식과 유지보수 능력을 갖춰야 해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 게이머에게 유용하면서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만한 게임이 하나 출시됐다. 바로 지난 1월 30일 출시된 인디게임 ‘PC 빌딩 시뮬레이터’다.
현실에 가깝게, 실존하는 하드웨어가 등장한다
‘PC 빌딩 시뮬레이터’는 이름 그대로 컴퓨터를 조립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컴퓨터 수리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 되어 손님들의 컴퓨터를 진단하고, 조립하고, 수리하는 등 경영에 힘쓰게 된다. 여기에 여유가 생긴다면 플레이어 본인 PC도 업그레이드 해보는 등 소소한 재미 요소도 있다.
플레이 방식은 간단하다. 이메일을 통해 빗발치는 손님들의 컴퓨터 수리의뢰를 해결하고 보수를 얻는 것이다. 먼지 쌓인 컴퓨터 내부를 청소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스템을 치료하는 기본적인 업무는 물론, 고장 난 부품을 진단하여 교체하거나, 손님이 원하는 수준의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성능을 계산한 후 알맞은 부품을 골라 조립하는 등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게임은 시뮬레이션 장르인 만큼 현실적이다. 인텔, AMD, 엔비디아, MSI, 레이저 등 실제 존재하는 하드웨어 회사 제품들이 등장하고, 가격이나 성능, 부품간 호환성 등 고려해야 할 가치도 동등하다.
손님을 상대하는 ‘경영 모드’ 외에도 ‘커스텀 모드’를 통해 현실에서는 높은 가격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만의 하이엔드 컴퓨터를 직접 조립해볼 수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부품이라고 생각하니 신중하게 성능과 호환성을 따지게 되고, 현실에서는 손대기 힘든 오버클럭이나 수랭식 쿨러를 설치를 부담 없이 즐겨볼 수 있었다.
게임으로 즐기는 컴퓨터 조립, 교육 소프트로도 손색없다
‘PC 빌딩 시뮬레이터’를 플레이하면서 줄곧 느꼈던 점은 게임이 굉장히 ‘교육적’이라는 것이다. CPU, RAM, 그래픽카드 등 각종 부품에 마우스를 올려놓았을 때 해당 물건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자세한 설명을 해줄 뿐만 아니라, 어느 위치에 어떤 절차를 밟아 설치해야 하는지까지 표시해준다. 만약 중간과정을 생략했거나,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시 별도 안내를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PC 빌딩 시뮬레이터’가 교육적인 측면에서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느껴졌던 것은, 이런 컴퓨터 유지보수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게임답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적절하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초보 게이머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컴퓨터 관리법이 ‘고객의 의뢰’라는 형태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컴퓨터가 처음 구매했을 때처럼 잘 돌아가지 않는다’며 ‘관리가 미흡해서 컴퓨터가 지저분해서 그런 것 같다’는 내용의 의뢰가 있는데, 목표가 ‘바이러스 제거’와 ‘먼지 제거’다. 또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했는데 게임을 실행하려고 하면 컴퓨터가 그냥 멈춘다’며 ‘파워는 바꾸지 않았는데 전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는 의뢰도 있다. 목표는 ‘파워 업그레이드’다.
심화과정도 존재한다. ‘뭐만 하려고 하면 컴퓨터가 뜨겁다’며 수리를 요구하는 의뢰가 있다. CPU 쿨러를 떼고 서멀 페이스트를 바르면 되는 간단한 의뢰인데, 이상이 없는지 벤치마크를 돌려보는 중 블루스크린이 떴다. 확인해보니 CPU 쿨러가 고장 난 상태라 제대로 열을 잡아줄 수 없어서 일어난 문제다. 게이머에게 가장 친근한 ‘특정 게임을 돌릴 수 있는 컴퓨터를 원한다’는 의뢰도 있는데, 해당 게임 권장 사양을 확인하고 그에 준하는 컴퓨터를 조립하는 경험도 즐겨볼 수 있다.
교과서에 그친 게임, 시뮬레이터라는 이름을 대기엔 ‘미흡’
‘PC 빌딩 시뮬레이터’는 확실히 교육적이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부각되는 큰 단점이 있다면 자유도가 크게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보통 시뮬레이터 게임은 플레이어가 여러 가지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행동에 큰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는 ‘쿠킹 시뮬레이터’라는 게임에서 극단적으로 묘사된다. 평범하게 요리를 즐길 수 있지만, 화재 시 사용하라고 비치해둔 소화기를 이유 없이 분사해보거나 전자레인지에 집어넣고 돌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PC 빌딩 시뮬레이터’는 교과서에 지나지 않는다. ‘PC 빌딩 시뮬레이터’는 플레이어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플레이 중 잘못된 부분이 있을 때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세세하게 표시되는 것은 물론, 그것을 올바르게 고칠 때까지 작업이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래픽카드를 교체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그래픽카드를 교체하고 나서 RAM을 하나 빼보았으나,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까지 작업을 마무리 지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용량이 부족하니 하드디스크를 추가 장착해달라는 의뢰에서, 손님 컴퓨터에 장착돼 있던 GTX 750ti를 제거하고 대신 GTX 1050ti를 끼워봤지만 원래 시스템으로 구성해달라는 경고 메시지 탓에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할 수 없다.
또 컴퓨터를 부팅하려면 마우스와 키보드를 무조건 연결해야 한다거나, RAM을 여러 개 설치할 땐 꼭 똑같은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등 ‘정석에 기반한 비현실적인 과정’도 존재한다. 이론상 컴퓨터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결하지 않아도 켤 수 있고, RAM 제조사 및 넘버링이 달라도 비효율적일 뿐, 장착할 수는 있다.
하지만 ‘PC 빌딩 시뮬레이터’에서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결하지 않으면 오류가 뜨면서 컴퓨터가 부팅되지 않으며, RAM은 같은 제품이 아니면 같이 장착할 수가 없다. 또 부품이나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는 위치가 전부 표시돼서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해버렸다. 앞서 말했듯 어디까지나 도덕적이고, 이론에 기반한 ‘교과서’에 가까운 것이다.
자유도보단 교육에 초점 맞춘 ‘PC 빌딩 시뮬레이터’
‘PC 빌딩 시뮬레이터’는 평소 쉽게 접할 수 있는 컴퓨터 유지보수 사례와 그 해결책에 대한 내용을 플레이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이미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있는 플레이어는 ‘아 나 이거 알아’, ‘다른 건 또 없나?’라는 생각에 게임을 즐기게 되고,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플레이어도 게임을 즐김과 동시에 컴퓨터에 대해 자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너무도 교육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시뮬레이터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닫아버린 것이 아쉽다. 한 유저는 “실제로 이 직업이었는데, 과잉 견적을 독촉하는 사장도 없고, 공임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객도 없고, 가격 흥정도 없다. 놀라운 선진 사회다”라는 리뷰를 남겼다. 좋게 말하면 선진 사회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틀에 박힌 전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더불어, 향후 패치를 통해 VR 플랫폼을 지원하길 소망해본다. 직접 손으로 부품을 만지고, 연결하고, 관찰할 수만 있다면 좀더 교육적이고, 자유로운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게임 UI가 가상현실을 의식한 듯 상당히 VR스러워서(?) 게임을 즐겨본 게이머들 사이에서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크다.
만약 평소에 컴퓨터 유지보수에 관심이 있거나, 어느 정도 제반 지식이 있는 게이머에게 ‘PC 빌딩 시뮬레이터’를 강력하게 추천해주고 싶다. 재미있게 게임을 즐기고, 쾌적한 게이밍 환경을 구성하기 위한 기본적인 컴퓨터 관리 기술도 익힐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