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게임도 귀에 걸면 AAA급, 코에 걸면 AA급
2026.11.04 18:07 게임메카 신재연 기자
지난 10월 센서타워가 공개한 인디게임 보고서를 보던 중 독특한 기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래곤 볼: 스파킹! 제로, 해리 포터: 퀴디치 챔피언즈가 AAA급 게임으로, 붉은사막 인핸스드와 듄: 어웨이크닝이 AA급으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붉은사막의 개발비를 2,000억 원 내외로 전망하고 있기에, 이 정도 게임이 AA로 분류됐다는 점이 의아했다.
사실, 수많은 업계와 언론에서 “AAA급 대작’이나 “탄탄한 AA급 게임”이라는 수식어는 매일같이 쓰지만, 정작 무엇이 AAA와 AA를 가르는지에 대한 기준은 제각기 다르다. 통상적으로는 막대한 제작비와 인력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를 AAA, 그보다 작은 중견 규모의 게임을 AA로 부르지만,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등의 공식 문서를 들여다보면 전 세계에 단일화된 표준 수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글로벌 데이터 기관들은 어떤 기준으로 게임의 체급을 나누고 있을까? 주요 시장조사업체들의 보고서 등을 기반으로 대략적인 기준을 조사해보았다.
숫자, 개발비, 퍼블리셔로 기준 잡는 ‘시장조사업체’들
명시적인 AAA 게임에 대한 수치 커트라인을 제시하는 시장조사업체는 뉴주(Newzoo), IDG 컨설팅(IDG Consulting), 가말리틱(Gamalytic), DFC 인텔리전스(DFC Intelligence)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측정하는 대상은 소비자 가격, 과거 개발비, 퍼블리셔 누적 매출, 예상 판매량으로 제각각이다.
먼저 뉴주는 2025년 글로벌 게임 시장 보고서의 출시 전략 분석에서 제작비가 아닌 ‘출시 정가(MSRP)’를 기준으로 삼았다. 2021년부터 2024년 사이 출시된 싱글플레이 게임을 대상으로 51달러(한화 약 7만 원) 이상은 AAA, 31달러에서 50달러 사이(한화 약 4만 원에서 7만 원 사이)는 AA, 30달러 이하(한화 약 4만 원)는 인디로 분류한 것이다.
IDG 컨설팅은 개발비와 판매량, 퍼블리셔 성격을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2019년 IDG 자료에 따르면, AAA는 개발비 2,000만 유로(한화 약 300억 원)에서 2억 유로(한화 약 3,000억 원) 사이가 투입되고 통상 300만 장을 초과 판매하는 대형 퍼블리셔 주도 게임을, AA는 개발비 100만 유로(한화 약 15억 원)에서 2,000만 유로(한화 약 300억 원) 사이, 판매량 20만 장에서 300만 장 사이의 특정 장르 특화 게임을 뜻한다. 다만 이는 IDG 보고서가 아닌 고객사 공시에 인용된 것이며, 제작비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진 2026년 현재 기준은 불명이다.
스팀 데이터 분석 서비스인 가말리틱(Gamalytic)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장 명확한 수치 기준을 제시하지만, 측정 대상이 개별 게임이 아니라 ‘퍼블리셔의 스팀 내 매출 체급’이다. 출시한 게임이 2개 이상인 배급사 가운데 스팀 누적 매출이 5억 달러를 초과하고 게임당 평균 매출이 1,000만 달러(한화 약 134억 원) 이상이면 AAA급 퍼블리셔로, 누적 매출이 5,000만 달러(한화 약 670억 원) 초과 5억 달러(한화 약 6,700억 원) 미만이면 AA급 퍼블리셔로 분류한다.
기본 기준에 ‘판단’ 더해 체급 잡기도 해
시장조사업체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센서타워(Sensor Tower) 등은 AAA의 비용 규모를 상대적으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다만 이 비용이 무조건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기준에 자체적인 판단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센서타워와 산하 비디오 게임 인사이트(VGI)는 2024년 PC 및 인디 시장 보고서 용어집에서 AAA를 대규모 팀과 기업이 개발하는 고예산 게임으로 설명하며, ‘통상(typically) 1억 달러(한화 약 1,340억 원)를 초과한다’고 서술했다. VGI 자체로도 인디 보고서에서 인디와 AA 및 AAA 사이의 경계가 불명확하다는 점을 공식 인정하고 있다.
즉 이들은 별도의 AA 수치 경계를 정의하진 않았으나, 수억 달러 단위의 매스 마케팅 집행력과 대규모 장기 투자를 받을 수 있느냐가 AAA급 게임의 진입장벽임을 보여준 셈이다. 이는 순수 개발비와 마케팅을 포함한 총 비용 자체가 규모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누가, 어떻게, 누구와 출시했냐가 AAA의 기준 가른다
즉, 이 데이터를 모두 종합해 보면 전 세계에 통용되는 절대적인 AAA급의 커트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파편화된 기준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보면, 업계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AAA의 실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입체적인 배경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AAA급은 ‘누가, 어떻게, 누구와 출시했느냐’ 따라 달라진다. 대규모 개발진이 투입되어, 수천억 원대의 순수 개발비와 이에 맞먹는 천문학적인 글로벌 마케팅 비용을 쏟을 수 있고, 개발비를 회수하고도 그 이상의 매출을 얻을 수 있는 초대형 퍼블리셔의 유통망을 타는 조건이 맞물릴 때 이견 없는 AAA로 인정받는다는 셈이다.
앞서 서두에서 언급한 센서타워 보고서의 의아한 분류 역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복합적인 배경을 대입하면 비로소 퍼즐이 맞춰진다. 국내에서 2,000억 원 안팎의 개발비가 투입된 것으로 추산되는 붉은사막이나 대작 듄: 어웨이크닝이 AA급으로 분류된 반면, 상대적으로 개발 규모가 작아 보이는 해리 포터: 퀴디치 챔피언즈나 드래곤 볼: 스파킹! 제로가 AAA급으로 언급되는 것도 순수 제작비보다 개발사 및 퍼블리셔에 더해 글로벌 IP 인지도가 분류 기준에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붉은사막이 통상 1억 달러라는 센서타워의 AAA급 기준에도 부합함에도 불구, 실제로 AA급이라 책정된 이유는 미국 회사인 센서타워 입장에서 한국 회사인 펄어비스를 대규모 기업이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AAA급과 AA급을 분류하는 것은 결국 분석사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이를 명확하게 나누려는 행위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AAA급, 코에 걸면 AA급인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