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HP, 묵직하면서 답답한 템포 국내서 통할까?
2021.08.06 17:33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세상 어느 창작물이건 이전 세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지만, 원류가 되는 작품의 게임성이 너무나도 확고하거나 영향을 너무 짙게 받을 경우 아류작, 혹은 표절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이를 뛰어넘으려면 게임 완성도를 탄탄히 하면서 본인만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야 한다. 현재 게임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그라운드, 원신 등은 모두 그렇게 자리잡은 작품들이다.
서론이 길었다. '마비노기 영웅전' 이은석의 신작인 프로젝트 HP가 5일, 프리 알파 테스트를 시작했다. 이 게임은 출시 전부터 '쉬벌리', '모드하우' 등 중세 PvP 공성전 게임과 한데 묶였다. 개발진 스스로도 이런 게임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으니, 연관성을 아예 부정할 순 없다. 실제로 HP의 공방 시스템이나 물리적 효과 등은 위 게임들의 그것과 상당히 흡사하다. 이런 상황에서 표절이나 아류작이라는 평을 듣지 않기 위해선 완성도와 차별화 요소를 뚜렷하게 보여줘야 한다.
일단 프리 알파 테스트이니만큼, 완성도 측면에선 미흡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거칠게 마무리 된 부분이나 버그, 밸런스 등은 일단 논외로 치자. 남은 것은 차별화 포인트다. 과연 HP는 쉬벌리로 대표되는 콘솔/스팀 중세풍 공성전 게임과 어떤 부분에서 다르며, 그 부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초점을 맞춰 게임을 즐겨 봤다.
차별화 포인트는 영웅 변신 시스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마법이다. 사실적인 중세 액션에 그치지 않고, 마법이라는 요소를 적당히 끼워넣어 차별화를 꾀했다. 그렇다고 마법이 펑펑 날아다니는 전형적인 판타지는 아니다. 기본 6개 클래스 중에선 힐러 역할인 스모크만이 마법 비슷한 것을 구사한다. 사실 이게 마법인지 뭔가 장치를 통한 기술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팡이를 들고 다니고 범위형 힐을 구사하니 마법이라고 하자.
보다 본격적인 마법은 변신이다. 대전에서 각종 활동을 통해 포인트를 일정치 쌓으면 영웅 4종 중 한 명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얼핏 메달 오브 아너나 모던 워페어 등에 탑재된 킬스트릭과 유사하다. 변신 자체도 마법이지만, 그 중에는 부활이나 보호막, 범위 화염구 등 진짜 마법이라 할 만한 것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근접전에서 거의 완벽한 성능을 자랑하는 기사, 말을 타고 전장을 휘젓는 기마 영웅도 등장한다. 사실적 전투를 기반으로 한 쉬벌리나 모드하우 등에는 없는 부분이다.
다만, 저 작품들에 없는 부분을 넣었다고 전부 차별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쉬벌리나 모드하우는 일명 '유럽 중세 덕후'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성에 집중한 작품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 전투에 마법을 넣는다고 무조건 매력적으로 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재미있게도 HP의 변신은 매력적이긴 했다. 굳이 '재미있게도'라는 말을 쓴 이유는 바로 아래에 설명할 게임의 템포 때문이다.
답답하게 느껴지는 느린 템포
HP의 템포는 느리다. 1차적인 비교 대상은 쉬벌리나 모드하우지만, 굳이 그 게임들을 가져다 놓지 않아도 확실히 느린 템포가 느껴진다. 이는 장단점이 명확한 특징인데, 장점은 무거운 갑옷과 육중한 무기를 휘두르는 중세 특유의 묵직한 전투를 잘 살렸다는 점이다. 확실히 쉬벌리나 모드하우는 비교적 가볍고 경박하게 움직이는 면이 있다. 참고로 타격감의 경우 위 두 게임보다 훨씬 괜찮다. 마영전의 노하우가 확실히 살아 있는 부분이다.
이제 단점을 설명해야 할 차롄데, 짧고 굵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답답하다. 움직임이 답답하고 발걸음이 느린 것이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절대 쾌적하지 않으며,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왠지 모를 응어리가 남는다. 전투 상황에서 뒷걸음질은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뛰는 속도도 상당히 더디다. 물론 이 템포에서도 수준 높은 공방은 가능하며, 나름대로의 재미는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첫인상 측면에서 호감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앞서 변신 시스템이 매력적이라고 말한 것은, 일반 전투의 느린 템포를 변신을 통해 상당 부분 벗어던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근접 공격 영웅인 미터는 상당히 경쾌하고 빠른 공방이 가능하기에 족쇄 풀린 망아지처럼 전장을 뛰어다닐 수 있으며, 말을 타고 빠르게 질주하는 먹바람의 공격은 일반 보병의 움직임으로는 피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범위형 화염 마법을 투하하는 레이븐은 위치만 잘 잡으면 일타 4~5킬은 기본으로 가져갈 수 있다.
영웅 변신은 궁극기 개념이기에, 자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6인 중 7~9위 정도 중위권 성적을 기준으로, 한 게임 당 적게는 2번, 많게는 3~4번 정도 변신할 수 있었다. 따라서 게임은 필연적으로 변신 게이지를 얼마나 빨리 채우고, 어떤 영웅을 골라서 전장을 뒤집어 놓을 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물론 극초반이라 플레이어들의 컨트롤이 완벽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영웅 캐릭터들의 상쾌함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일반 유닛의 답답한 움직임을 의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인상까지도 받았다.
공성전 게임의 대중화가 목표라면
HP 제작진은 쉬벌리, 모드하우, 마운트 앤 블레이드 같은 선두 주자들이 아직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지 못했고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유행하고 있기에, 장기간 라이브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 HP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확실히 마니아 게이머가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중세 공성전 게임을 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실제로 넥슨은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엔비나 카트라이더 등 장르 대중화에 성공한 전적도 있으니 이런 접근도 나쁘진 않다.
그러나, 장르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적어도 현재의 HP는 입문 난이도가 그리 낮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게임성 측면에서는 위 게임들보다 더 하드코어한 부분도 있으며, 전체적인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은 '보는 게임'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앞서 언급한 마니아 취향 게임들도 일반적인 액션 게임에 비해 움직임이 답답한데, 라이트 유저들까지 대상으로 한다면야 이 부분을 좀 더 풀어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더불어 부분유료화 게임으로 출시될 경우 밸런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유료 아이템의 존재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일말의 걱정도 남는다.
일단 프리 알파 단계임에도 나름 잘 구성된 튜토리얼이나, 공격 시 무기가 밝게 빛나는 표시 시스템, 피아 식별 표시 등 제작진의 노력은 느껴졌다. 더불어 마영전 제작진답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캐릭터 모델링이나 한국어로 녹음된 중세풍 군가 등은 확실히 마니아층이 아닌 라이트 유저들에게도 먹힐 만한 부분이다. 즉, 현재로서는 이 묵직하고 답답한 템포에 많은 게이머들이 쉽게 적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적어도 이제까지 국내에서 흥행한 게임들을 보면 움직임이 가볍고 컨트롤이 쉬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