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월드에 가려지기 아까운 명작, 인슈라오디드
2024.01.26 18:15게임메카 김형종 기자
크래프팅, 기지건설, 생존 게임들의 핵심 재미는 내 손으로 기지를 건설하고 살아남으면서 주변을 탐험하는 과정에서 오는 긴장감과 성취감이다. 그중에는 ‘프로젝트 좀보이드’처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앞서 해보기인 게임도 있고, ‘발헤임’이나 ‘팰월드’처럼 출시와 동시에 엄청난 흥행몰이를 한 게임들도 있다.
인슈라오디드는 이미 포화상태로 보이는 장르에 도전장을 내민 신작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판타지 배경과 독특한 세계관, 복셀 기반 기지 건설 등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아쉬운 점이라면 스팀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동일장르 신작 팰월드에 가려져 비교적 관심도가 떨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슈라오디드는 탄탄한 기반 시스템과 세계관, 뚜렷한 특징을 갖춘 수작이다. 팰월드에 묻힐 게임은 절대 아니다. 실제로 26일 기준 스팀 전세계 최고 판매량에서는 팰월드에 이어 2위를, 일 최고 동시접속자는 13위를 기록하는 등 상당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입소문을 타면 탈수록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멸망한 세상을 재건하는 세계관과 '어둠의 장막'
인슈라오디드는 '어둠의 장막'이라는 저주로 인해 멸망한 세계를 재건하는 스토리를 다룬다. 플레이어는 ‘불의 자손’으로, 고대인과 인간이 힘을 합쳐 불 속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존재다. 어둠의 장막은 닿기만 해도 저주에 걸리는 극한의 저주이지만, 불의 자손의 경우 불의 힘을 이용해 어둠의 장막 속에서도 짧은 시간 생존할 수 있다.
이 어둠의 장막은 게임에 긴장감과 생존의 위협을 부여하는 핵심 요소다. 사실 인슈라오디드는 여타 생존게임과 비교하면 이런 생존과 관련된 요소가 다소 부족하다. 조금 하드코어한 생존게임들은 허기, 수면, 온기 등이 부족하면 곧바로 사망한다. 그러나 인슈라오디드는 반대로 이런 상태에서 버프를 받는다. 대부분의 크래프팅 시스템 역시 성장 중심으로 설계됐으며, 생존게임 필수 요소인 밤에 쳐들어오는 적도 등장하지 않는다.
얼핏 밍밍해 보일 수 있는 이러한 긴장감을 끌어올려주는 것이 바로 어둠의 장막이다. 게임 내에는 세계 전반에 걸쳐 어둠의 장막이 생성되어 있다. 이 어둠의 장막 안에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즉사하며, 안개 때문에 시야도 극히 불안정해진다. 또한 플레이어를 노리는 각종 함정과 오브젝트가 도사리고 있으며, 일부 적은 무한히 생성되기도 한다. 여러 지역을 탐험하기 위해서는 이 어둠의 장막을 자주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생존에 대한 긴장감을 높이는 요소로 자리한다.
플레이어가 처음 세계에 돌입하고 나면, 먼저 불의 제단이라는 아티팩트를 세우게 된다. 불의 제단은 불의 자손인 플레이어가 불의 힘을 퍼뜨리기 위해 짓는다는 설정이다. 게임에서 이 제단은 빠른 이동, 건설, 성장을 돕는 만능 구역이다. 구역 주변 일정 범위까지는 재료가 허락하는 대로 원하는 건물을 세울 수도 있다. 벽을 붙이거나, 창문을 내거나, 지붕을 엮거나, 튀어나온 모서리를 다듬는 등 건물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많은 기능이 제공된다.
RPG 향이 강하게 첨가된 크래프팅
인슈라오디드는 탐험, 크래프팅, 퀘스트가 긴밀하게 연동되는 성장 시스템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RPG는 캐릭터 성장을 위해 재료를 파밍해 장비를 만들거나, 보스를 잡거나, 레벨을 올려야 한다. 인슈라오디드 역시 캐릭터 레벨, 능력지, 장비 등이 존재하는데, 이것들이 탐험, 퀘스트, 크래프팅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실질적으로 캐릭터 전투력이 강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방어구를 만드는 것이다. 더 고급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상위 설비와 재료가 필요한 것이 일반적인 제작 게임의 특징이다. 인슈라오디드는 여기에 NPC와 퀘스트라는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제작 시스템의 자유도를 제한한 대신 서사와 RPG 요소를 강화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5인의 제작 장인을 구출한다. 각각 연금술사, 대장장이, 사냥꾼, 목수, 농부며, 이들은 각자 자신의 정체성에 알맞은 제작 재료와 제작 설비를 제공한다. 일반적인 크래프팅 게임과 달리 재료가 있더라도 장인이 없거나, 제작에 필요한 설비가 갖춰지지 않으면 아이템을 만들 수 없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장인들은 RPG에 등장하는 NPC처럼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를 건넨다. 주로 특정 아이템을 얻기 위해 해당 물건이 있는 지역을 탐험하라는 방식이다. 이를 수행하면 제작과 관련된 상위 설비를 건설할 수 있다. 새로운 설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다른 장인이 제공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장인의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대장장이 장인 퀘스트에서 용광로를 건설하기 위해선, 먼저 목수 장인이 제공하는 퀘스트를 완료하고 ‘가마’를 지어야 한다.
일반적인 크래프팅 게임은 상위 지역을 탐험하다가 새로운 자원을 채취하면, 곧바로 레시피가 개방되어 이를 활용할 수 있다. 본 게임은 장인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새로운 재료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간혹 자유도가 높은 게임에서 ‘이제 뭘 하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인슈라오디드에서는 전혀 없다. 새 지역에서 재료를 얻으면 장인이 새 퀘스트를 주고, 이를 완료하면 또 새로운 퀘스트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보상과 재미가 넘치는 지역 탐험
잘 구성된 퀘스트 기반 RPG에 더해, 인슈라오디드는 탐험에 많은 보상을 선사한다. 일반적인 방어구는 제작을 통해 획득할 수 있지만, 무기와 장신구는 그렇지 않다. 무기의 경우 낮은 레벨 일반 무기는 제작할 수 있지만, 상위 등급 무기는 제작이 어렵다. 장신구는 등급과 무관하게 제작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 좋은 무기를 얻기 위해서는 각 지역의 폐허, 마을, 고성, 동굴 등을 돌아다니며 탐험해야 한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은색, 금색 상자를 심심치 않게 보는데, 여기서 높은 확률로 무기를 얻을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에픽, 전설 무기도 낮은 확률로 획득한다. 장신구는 무기보다 더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다.
탐험을 하다 크래프팅의 기본이 되는 여러 자원과 재료를 획득하는 것은 덤이다. 예를 들어 중반부 구역에 해당하는 ‘레벨우드’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구리 광석’, ‘진흙’ 등을 얻을 수 있다. 이것들은 일부 방어구와 제작 시설을 위해 필수 재료이기 때문에, 레벨우드 탐험은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탐험 자체가 게임 스토리 전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만큼 재미요소도 충분하다. 각종 마을과 고성에는 멸망한 인류가 남긴 각종 편지와 서류를 찾아볼 수 있다. 그곳에선 이들의 일상적인 삶이나 저주 직전의 모습 들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일부 서류에는 저주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연구 일지가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지역들마다 서로 다른 퍼즐, 적 등이 등장하기 때문에 탐험 자체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단순하지만 모이면 강력한 적, 그리고 다양한 대응책
인슈라오디드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다양한 적들과 마주치게 된다. 플레이어는 크게 근접, 마법, 활을 사용해 적과 싸우게 된다. 활을 제외하고 근접과 마법은 무기 형태에 따라 각각 한손무기와 양손무기, 스태프와 완드로 나뉜다. 스태프의 경우 화살과 유사한 주문을 소모하는 형태로 강력한 마법을 발사한다. 무기 밸런스가 상당히 절묘한데, 근접무기는 리스크를 동반하고 리스크가 없는 원거리 무기는 화살이나 주문을 만들어야 해서 소모 자원이 많다.
인슈라오디드에 등장하는 적들은 소수가 등장할 때는 난도가 높지 않다. 강력한 적도 대미지는 강하지만 움직임이 단조롭기 때문이다. 일반 필드에서는 보통 많아야 세 마리 정도가 등장하는데, 이때는 근접공격으로 동시에 공격하거나, 원거리에서 차근차근 하나씩 정리하면 된다. 등장하는 적 패턴도 주로 돌진해서 공격, 혹은 원거리에서 활쏘기 정도로 다소 단순한 편이다.
문제는 요새나 마을 등 다수의 적이 도사리는 구역에서 발생한다. 특히 고렙 구역에서는 더 많은 수의 적이 쏟아지는데, 쉽게 느껴졌던 게임이 소울 장르로 변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원거리에서 폭탄과 활이 날아들고, 바로 뒤에 늑대와 쌍수 살인마가 쫓아오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인슈라오디드의 장르가 왜 ‘생존’인지를 체감하게 된다. 특정 지역에서는 보스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체력도 매우 높고 대미지도 강력하면서 다양한 패턴까지 선보여 플레이어를 고전하게 만든다.
다행히도 게임 내에는 적에게 대응하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죽음을 반복하는 방법이다. 사망 페널티가 크지 않아 계속해서 돌격하며 부딪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다양한 스킬과 장비 활용이다. 이단 점프와 그래플링 훅으로 적이 올라올 수 없는 고지를 선점하여 원거리 공격으로 하나하나 처치하는 식이다. 기습 스킬을 통해 최대한 은밀하게 적을 고대인의 곁으로 보낼 수도 있으며, 연쇄 번개 등 값비싼 광역 마법을 다량으로 제작해 아낌없이 쏟아낼 수도 있다.
더 참신한 방법도 있다. 바로 굴 파기 요소를 응용하는 것이다. 인슈라오디드는 기본적으로 크래프팅 게임이기 떄문에 자원 채취를 위해 땅을 파는 곡괭이를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 그래서 적이 지나치게 많은 장소를 피해 위해 우격다짐으로 땅굴을 파, 적의 아래로 지나갈 수도 있다. 퀘스트를 수행 중일 경우에는 이를 활용해 목표만 탈취한 뒤 도망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자유로운 게임플레이 역시 인슈라오디드의 장점이다.
다만 기존에 소개한 성장시스템과 탐험이 잘 이루어진 나머지 작은 단점도 있다. 바로 전투의 보상이 적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레벨 늑대와 11레벨 늑대를 처치했을 때, 경험치를 제외하면 보상은 뼈와 늑대고기와 가죽 정도로 동일하다. 다만, 11렙 늑대는 당연하겠지만 매우 강하다. 고렙 지역에서 추가되는 일부 강력한 적도 일반 개체와 보상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전투 자체가 청소의 일환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인슈라오디드는 훌륭한 RPG와 크래프팅 기반을 갖춘 신작이다. 퀘스트를 적극 활용해 자칫 헤맬 수 있는 크래프팅 게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보상과 스토리를 통해 탐험의 확실한 묘미도 부여했다. 전투 또한 자유도와 전략성이 살아있어, 스킬이나 주변 지형을 적절하게 활용해 전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26일 현재 한국어 번역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다. ‘불(fire)’을 ‘발사(fire!)’로 번역하는 등, 게임 진행에서 차질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아직 앞서 해보기 상태인 만큼, 이런 문제들을 개선한다면 훌륭한 명작이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