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에는 체험판이나 시연 버전에서 엄청난 기대감을 주었으나 정식 출시된 본편에서는 실망감을 안겨준 일명 시식용 게임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인 브루탈 레전드나 포스포큰 등은 화려하고 감각적인 액션으로 유저를 사로잡았으나 본편에서는 장르적 괴리나 부족한 콘텐츠로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시연 영상과 실제 게임의 지나친 괴리나 허위 과장 마케팅은 유저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며 사법적 다툼이나 스튜디오 폐쇄로 이어지기도 했다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마트에 가면, 시식 코너에 항상 들르게 된다. 그 곳에서 먹은 만두 한 조각은 미슐랭 3스타 딤섬 레스토랑 뺨치게 맛있고, 소고기 한 점은 1+++++등급 소가 있다면 이런 맛이겠거니 싶다. 그러나 막상 해당 제품을 구매해 집에서 조리해 먹으면 그 맛이 절대 안 난다. 그야말로 '시식 코너의 마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례가 게임계에도 존재한다. 체험판이나 시연 버전에서는 감각적인 액션과 갓겜의 향기를 풍기며 기대작으로 자리매김하지만, 막상 정식 출시된 본편에서는 쉰내가 진동하거나 아예 이전 모습과 다른 경우까지 있다. 체험판만 맛있었고 본편은 비판 받았던 시식용 게임들을 살펴보자.
TOP 5. 브루탈 레전드
2009년 더블 파인 프로덕션이 개발하고 EA가 배급한 '브루탈 레전드'는 게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르 오해 마케팅' 사례로 꼽힌다. 잭 블랙이 성우를 맡은 주인공이 헤비메탈 기타와 도끼를 휘두르며 악마들을 썰어버리는 체험판은 그야말로 록 스피릿 충만한 3인칭 액션 갓겜이었다. 출시 3주 전 공개된 약 30분 분량의 데모는 찰진 타격감과 터져 나오는 메탈 사운드로 록 마니아들을 열광시켰고, 유저들은 최고의 액션 어드벤처가 탄생한 줄 알았다.
하지만 본편은 액션 어드벤처에 RTS 요소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게임이었다. 액션은 초반에만 잠깐 나오고, 본편은 자원을 모으고 유닛을 소환해 무대 위에서 맞붙는 '스테이지 배틀'이 핵심 축이었던 것이다. 퍼블리셔였던 EA는 '콘솔에서 RTS는 금기어'라며 게임을 액션 장르로 포장했고, 체험판 역시 운전과 근접 전투 위주로 구성했다. 액션을 기대했던 유저들에게 불친절한 RTS 튜토리얼과 패드 조작은 속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게임 자체는 재평가 될 정도로 그럭저럭 잘 나와 메타크리틱에서는 80점 안팎으로 나름 호평을 받았지만 판매는 목표에 못 미쳤고, EA는 속편 계획을 접었다.
▲ 데모에서는 분명 이런 액션 게임이었는데... (사진출처: 스팀 커뮤니티)
▲ 정식 버전에서는 RTS가 튀어나와 당황스러워진 게임이었다 (사진출처: 스팀 커뮤니티)
TOP 4. 포스포큰
스퀘어에닉스의 야심작이었던 '포스포큰'은 PS5의 차세대 성능을 과시하는 액션 RPG로 포장됐다. 2022년 12월 PS5로 먼저 공개된 체험판에서 보여준 마법 파쿠르와 원소 마법을 조합한 전투는 손맛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저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리긴 했고 시네마틱 트레일러부터 오글거리는 대사가 지적되기도 했지만, 시원시원한 고속 이동과 눈이 즐거운 액션성 덕분에 일부 유저들은 '전투 원툴'로도 밥값은 하겠지라며 행복 회로를 돌렸다.
막상 2023년 1월 정식판 뚜껑을 열어보니 체험판에서 본 마법 액션이 이 게임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텅 빈 오픈 월드는 의미 없는 퀘스트로 점철됐고, 주인공과 팔찌 동료의 매력 없는 티키타카는 쉴 새 없이 귀에서 맴돌며 서사적 몰입을 방해했다. 여기에 아쉬운 최적화까지 겹치면서 출시 당시 메타크리틱 68점의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결국 개발사 루미너스 프로덕션은 2023년 5월 스퀘어에닉스 본사에 합병되며 별도 스튜디오로서의 막을 내렸다.
▲ 체험판 이상의 무언가를 못 보여준 포스포큰 (사진출처: PS 스토어 공식 홈페이지)
TOP 3. 에일리언: 콜로니얼 마린스
기어박스 소프트웨어가 개발하고 세가가 배급한 '에일리언: 콜로니얼 마린스'는 2011년 E3와 PAX에서 공개된 게임플레이 시연으로 팬들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영화 '에일리언 2'의 세계관을 충실히 재현한 분위기, 지능적으로 매복하고 협공하는 제노모프의 AI, 뛰어난 그래픽까지 더해져 "역대 최고의 에일리언 게임이 나올 것"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기어박스 대표 랜디 피치포드는 이 영상을 두고 직접 "실제 게임플레이"라고 못 박았고, 세가는 해당 영상을 공식 트레일러로 반복 사용하며 마케팅에 활용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12일 정식 발매된 본편은 시연 영상과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다. 그래픽 디테일과 조명 효과는 눈에 띄게 후퇴했고, 지능적이던 제노모프는 벽을 보고 멍하니 서 있거나 플레이어 시야로 그냥 걸어 들어오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평단은 혹평 일색이었고 메타크리틱 점수는 플랫폼 공통 40점대 중반에 머물렀다. 시연과 실제 게임의 괴리가 워낙 심각해 일부 구매자들은 허위 광고 혐의로 세가와 기어박스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세가 유럽은 결국 영국 광고표준위원회(ASA)에 "공개된 트레일러가 실제 게임 내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시인하며 관련 영상에 안내 문구를 추가하기로 합의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게임 업계에서 '데모 사기'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 시연 버전에서 등장한 지능적이고 무시무시한 제노모프는 (사진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 본편에서 멍청한 샌드백이 되어버렸다 (사진출처: 스팀 커뮤니티)
TOP 2. 앤썸
바이오웨어의 '앤썸'은 VIP 및 오픈 데모 공개 당시만 해도 차세대 루트 슈터의 새로운 지평을 열 희망이었다. '자벨린' 수트를 입고 아이언맨처럼 창공을 유려하게 비행하는 체감은 압도적이었고, 화려한 입자 효과가 터지는 콤보 슈팅은 뽕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비행과 전투의 손맛에 매료된 유저들은 '본편에서는 다 고쳐서 나오겠지'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예구 버튼을 꾹꾹 눌러댔다.
현실은 냉혹했다. 화려한 비행은 과열 시스템 탓에 툭하면 제약을 받았고, 악명 높은 무한 로딩 화면은 유저의 인내심을 갉아먹었다. 파밍 게임인데 아이템 옵션 적용이 엉망이었고, 엔드 콘텐츠는 바닥을 드러냈다. 스토리 명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조악한 서사에 의미 없는 오픈 월드까지, 총체적 난국 속에서 앤썸은 허덕였다. 2020년 핵심 게임플레이를 재설계하겠다며 내놓은 대대적 개편안 '앤썸 넥스트'마저 2021년 2월 개발이 중단됐고, 결국 2026년 1월 12일 서버가 종료되며 더 이상 플레이할 수 없는 게임이 됐다.
▲ 수트 입고 날아다닐 때의 첫 느낌만 끝내줬던 게임 (사진출처: EA 앤썸 공식 홈페이지)
TOP 1. 스포어
심시티의 아버지 윌 라이트가 기획한 '스포어'는 본편 출시 석 달 전인 2008년 6월, 별도 소프트웨어로 나온 '크리처 크리에이터' 하나로 전 세계를 신드롬에 빠뜨렸다. 단세포에서 시작해 나만의 괴생명체를 자유롭게 조형하고 움직임을 부여하는 도구는 경이로웠고, 출시 첫 주에만 100만 개가 넘는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유저들은 이 생명체들이 거대한 우주 문명으로 진화할 압도적인 자유도를 상상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식 게임의 구조는 크리처 크리에이터가 보여준 무한한 가능성에 미치지 못했다. 세포, 생물, 부족, 문명, 우주로 이어지는 거창한 다섯 단계는 깊이 있는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단순한 미니게임들을 이어 붙인 것에 가까웠다. 크리처의 신체를 어떻게 기상천외하게 창조하든 게임플레이에는 단순한 수치로만 반영되며 창조적인 디자인 역시 빛을 잃었다. 체험판에서 꿈꿨던 '진화의 깊이'는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 윌 라이트의 TED 스포어 시연 영상 역시 많은 이들에게 꿈을 심어줬지만, 막상 커스터마이징 이후 본 게임 플레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진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